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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김진원(국제관계학, gabriel9010@naver.com)

 

1. 단군의 자손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우리에게 익숙한 한 배달대행업체의 광고문구이다. 광고는 그 답을 ‘배달(配達: delivery)의 민족’이라고 제시하고 있는데, 비교적 어린 세대에게는 그저 한국의 발달된 배달문화를 잘 표현한 작명의 사례일 수도 있으나, 기실 이 카피는 한 회사의 광고로 널리 퍼지기 전에, 한민족의 기원설화와 단일민족성을 담고 있는 민족적 광고(혹은 캠페인)의 카피였다.

많은 한국인들이 (업체의 광고 이전에) 지나가면서라도, 혹은 아득한 어린시절의 기억 속에서라도 이 문구를 들어봤겠지만, 그 뜻이나 유래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마 적을 것이다. ‘배달’은 상고시대의 한국을 지칭하는 말로(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倍達이라는 한자로 표기되기는 하나 순 우리말이라는 주장, 박달(朴達) 또는 백달(白達)이라는 말에서 나온 말이라는 주장, 혹은 그러한 말들의 기원이라는 주장, 고대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왔다는 주장, 근대에 최초에 등장한 개념이라는 주장 등 그 기원과 본래 의미에 대한 수많은 설이 존재한다.

그 유래와 의미에 대한 논쟁을 차치하고, 배달이라는 용어가 일반 민중들에게 널리 퍼지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 전후이다. 1909년에 공개 된 대종교의 《단군교 포명서, 1904, 1914년의《신단실기》, 1918년 최남선의 《계고차존》, 1925년 공개된《규원사화, 1675》와 1929년 단재 신채호의 《조선사연구초》등에서는 삼국사기의 행간과 삼국유사의 신화적 표현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고조선의 흔적을 정사(正史)로 승격시키고, 단군왕검을 민족의 시조로 재정립하고자 했다. 이러한 노력들은 당시 일제의 식민지배로 좌절된 독립 민족국가 수립의 열망이 반영된 민족주의적 연구이면서 민족의 뿌리를 확립하여 민족적 자존심을 확립하기 위한 민족주의적 캠페인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민중의 마음 속 깊숙이 자리잡게 된 단군왕검과 고조선, 즉 배달의 역사는 해방과 한국전쟁, 산업화 민주화 등을 거치며 홍익인간’, ‘반만년 역사’, ‘단일민족’, ‘북방민족 기원설등 한국의 전통적 민족 이데올로기를 구성하는 거의 모든 기제의 근원이자 중심이 되었다. (또한 매 시기 인용되었다.) 수 많은 어린이들은 곰과 호랑이가 등장하는 단군신화를 친숙하게 받아들였고, 초등교육기관에는 단군상이 세워져 있었으며, 103일은 개천절로 지정되어 기념되었다. 신문에서는 서기와 단기(檀紀)를 함께 표시했다. 그 사례를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는 이 민족적 캠페인은 한국역사의 중요한 장면마다 등장하였고, 개인의 생애주기에 걸쳐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주입되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곰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환단고기 등 (유물 등)증거 없이, 설명으로 이루어진 한국 상고사에 대한 기록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물론 이러한 모습은 비단 한국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은 아니다. 많은 국가들에서 상고시대의 역사와 창조(혹은 건국)신화가 일정부분 뒤섞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실 세계의 어떠한 민족도 그 인종적 유사함을 제외하고서는 내부적으로 문화적 동질성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민족이라는 것은 신화 또는 환상이며, 이러한 관점에서 민족은 창조되거나 상상되는 것[1]이라는 주장도 존재한다. 집단의 상상 속에서 우리의 유구한 반만년 역사와, 단일성, 더 나아가 그 우월성은 창조되어 확고 하지는 않지만 (굳이) 의심하지 않는 믿음으로 자리잡았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에서 민족의 이름으로 단결하고 또 피와 땀, 눈물을 흘리는 것은 꽤나 긴 세월 동안 (현재에도) 거의 절대적인 덕목으로 인정되었다. 이러한 면에서 한국에서 민족주의적 캠페인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배달의 민족을 위시한 단일민족 슬로건은 지금에 와서 그 본래의 의미와 파급력을 상실한 것으로 보여진다. 한국사회에 팽배한 개인주의의 영향으로 민족주의적 열기가 사그라진 것일까? 과거에 비해 그 영향력이 작아진 경향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아직도 민족주의는 한국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국면에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군중을 규합하고 움직이는 동력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현대 한국사회에서 발현되고 있는 민족주의는 어떠한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일까?

 

 

2. ()과 저항의 민족

 

한국에서 민족의 정서나 그 기질을 한 마디로 정의해보라 한다면, (부정적인 평가를 제외하고) ‘저항을 꼽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단 한 번도 선제적 침략을 하지 않았으나, 수많은 외침을 받아 수많은 백성들이 희생되고 국가는 도탄에 빠진 한에 사무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 민족은,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여 살수에서, 귀주에서, 명량에서, 강화도에서, 청산리에서 이민족을 패퇴시킨 저항의 민족이라는 수사는 한국인에게 익숙할 것이다.

이러한 한과 저항의 역사가 가장 극적으로 표현되는 곳은 일제강점기 전후의 시대상일 것이다. “단 한 번도 (심지어 그 대단한 몽골제국으로부터도) 이민족의 지배를 받지 않았던 우리 민족은, 잔악한 일제의 침략야욕에 희생되어 36년 간 한 맺힌 식민지배를 받았지만, 수많은 독립 의사와 열사의 구국정신과 희생으로 끝내 광복을 맞이 한 저항의 민족정신은 현대에서도 끊임없이 회자되고 재생산되고 있는 민족주의적 기제이다.

위와 같은 특징을 가진 민족주의, ‘저항적 민족주의로도 표현되는 반식민민족주의(Anti-colonial nationalism)에서 정의되는 민족은 고전적 의미의 민족과는 다르게, 그리고 또한 유럽에서 이주한 주민들이 중심이 된 식민지 민족국가에서의 민족과는 구별되는 기원적 측면에서의 특성을 가진다. 그 특성은 제2차대전 이후에 독립한 대개의 탈 식민지 국가는 온전한 자력으로 독립하지 못하였던 것에 기인한다. 국력이 쇠한 제국들(연합국, 추축국 공히)의 퇴각으로 독립을 맞이한 이들 국가는 국민(민족)에 의한 국가의 건설이 아니라 국가에 의한 국민의 건설이라는 과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식민지 시절 압제자인 제국과의 타자화와 저항을 중심으로 형성된 민족의식은 많은 국가에서 해방공간에서의 단일국가 수립을 이끌지는 못했다. 한국에서, 인도에서, 베트남에서 저항의 대상이 소멸한 해방공간에서 민족은 빠르게 재구성되었다. 서로 상이한 정치적 이념, 종교, 인종 등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민족주의가 창궐하였고, 그들은 공히 자신들이 제국에 저항한 주체이자 민족의 역사를 이을 적통을 가졌다고 주장하였다. 임시적으로 수립된 정권은 이를 조화롭게 아우를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였고, 이합집산을 거치며 주도적 세력을 얻게 된 2~3개의 대립하는 정체(正體)는 각자의 국가를 수립하고, 국토는 분단되었으며, 상대의 복속이 아닌 수복을 위해 내전에 돌입하였다.

탈 식민지 국가에서 민족주의는 독립국가의 형성과정에 자극을 준 사회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그 사회의 엘리트들이 중심이 되어 조성하였다. 그들은 국가를 수립하여 권력장악을 열망하였고 민족주의 감정은 주로 정치공동체의 단합을 강조하는 심리적 초점에 근거한 신화와 연관되었다.[2] 일제시대의 한국에서도 단재 신재호와 같은 당대의 엘리트들이 단군을 신화에서 역사로 구현하고자 했던 것처럼, 새로 수립된 한국과 북한의 정부의 엘리트들 역시 새로운 민족을 창조해야 했다.

앤서니 스미스는 민족의 창조(형성)와 영속에는 족류정체성과 족류공동체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족류-상징적 접근방법) 족류공동체가 장기지속적인 연대의 공동체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상징자원, 문화자원이 필요한데, 신화, 상징, 기억, 가치로 제시되는 이들 자원은 주관적 차원의 민족정체성 인식을 형성하고, 이를 매개로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이 광범위한 범위에서 상호작용 한다고 주장한다.[3]

특히 식민지에서 벗어난 많은 국가들에서 종족이나 종교에 기초한 민족주의적 열정이 분출되었고, 이 열정의 자산은 1)선민의식 2)고토에 대한 애착 3)종족사의 다양한 분야에 대한 황금기에 대한 공통의 기억 4)영웅적 자기희생에 대한 숭배였다. 일반적으로 민족주의자들은 이러한 기초 위에 과거의 모티브나 상징, 신화들을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선택하고 수정하여 덧붙였다. 앤서니 스미스는 이러한 방법으로 창조된 민족정체성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특히 강력하고 탄력적일 것이라고 전망하였다.[4]

그렇다면 한국인들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7천만 동포가 공유하고 있는한민족은 어떻게 형성되었고, 영속하게 되었을까? 본고를 통해 그 과정 및 결과, 양상을 상세히 기술할 순 없기에, 개략적인 서술로 갈음하며, 가치판단을 최대한 배제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힌다.

 

 

3. ‘한민족’ vs ‘김일성민족

 

한국전쟁 이후 한국과 북한은 공히 이러한 민족창조의 작업에 착수하였다. 우선 북한의 예를 들자면, 김일성과 빨치산 인사들의 항일운동 경력을 선전하고 미화하고 확대하여 제국주의 타도를 위해 헌신하고 투쟁하는 지도자상과 국가상을 구축, 개인과 정권, 국가의 정통성과 정체성으로 삼았다.

이러한 민족창조 작업은 권력승계 국면에서 더욱 부각되며, 1994년 김일성 사후 김정일은 담화를 통해 우리 민족의 건국 시조는 단군이지만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는 김일성으로 선포하며 기존의 조선민족이라는 민족의 이름을 김일성민족으로 치환하기에 이르렀다.

항일을 정통성으로 삼은 북한은 이후 한국 및 미국과의 대치국면에서도 일본제국주의에 이어 새롭게 조선민족을 핍박하는 미국제국주의와 그 괴뢰정권인 한국과 대결하며 혁명(비상)의 상시화를 통해 강력한 통제를 유지하고 국민의 희생을 강요할 수 있는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북한은 김일성이라는 태양을 따르는 축복받은 민족(선민의식), 민족해방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고토회복열망), 김일성민족 100년사의 찬란한 위업(황금기의 역사),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 그리고 그 가족들과 동료들의 혁명사(영웅적 자기희생) 등의 기제를 통해 자신들의 (저항적) 민족을 창조하였다.

           한국은 해방 이후 각종 이슈로 인해 친일청산에 실패한 경험과 박정희정부 당시의 한일협정 체결 등으로 일본을 배격하는 기존의 반식민민족주의를 유지할 수 없었다. 따라서 당대의 엘리트들은 단군으로부터 이어오는 단일민족(선민의식), 반공을 국시로 한 북진, 혹은 승공통일(고토회복열망), 도덕적, 과학적으로 탁월한 선조들이 이룩한 유구한 역사(황금기의 역사), 고난을 극복하고 민족을 구원한 성웅들과 그 영웅담(영웅적 자기희생)등의 기제에 더해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한민족의 탁월함과 정통성의 증거로 삼고 이를 중심으로 한민족을 창조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명) 산업화 세력과 대치하고 있던 (일명) 민주화 세력은 이와 같은 민족의 모습에 동의하지 않았고, 민중의 감정 속 내재되어 있는 반식민민족주의(저항적 민족주의)의 기조를 이어갔다. 이에 과거의 적인 일본과, 한국의 독재정권, 그리고 그 둘을 비호하는 미국을 제국주의자로 정의하며 저항과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러한 우리’(민족) 이외의 타자에 대한 인식의 극명한 차이는 한민족의 개념 안에 균열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각각의 정치세력은 정권교체기마다 자신의 정치적 정통성과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저마다 창조한 같으나 또 다른민족의 개념을 설파했고, 이는 리더십 그룹과 그 지지세력들을 상호작용하게 해주었으며, 그 과정과 이를 기반으로 한 각 세력 내 엘리트들의 세계관, 그들이 행하는 통치행위, 거기에 반하는 반대세력들의 저항 등을 통해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4. 민족보단 먼 이민족보단 가까운

 

           민족은 그 한자(民族)의 뜻이 주는 의미와는 다르게 생물학적이기보단 다분히 정치적이다. 한반도 내의 정치역학을 박정희로 대표되는 산업혁명세력, 김대중으로 대표되는 민주혁명세력, 김일성으로 대표되는 공산혁명세력의 각축으로 바라보는 시각[5]에서도 보여지듯 각 정치세력은 자신들만의 정통성을 구축하였고, 이를 통해 권력을 획득하고 민중과 상호작용하였다. 이 과정에서 각각의 세력들은, 민족적 열정이 충만했으나, 민족의 (구체적)개념이 아직 탄생하지 않았던 해방 이후의 공간에서 민족과 유사한 정치단위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민족을 대체하는 정치단위로 발전)

           그러나, 한민족의 개념 안에 포함되는 민주화세력과 산업화세력은 각각을, 또한 상대를 다른 민족이라 표현하지도 그렇게 여기지도 않는다. 각각의 내부에서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옹호하고 중요시 여기는 민족적 기제(상징자원, 문화자원; 신화, 상징, 기억, 가치)는 서로 다른 지점이 많고 이러한 열정의 기제를 통해 단결하고, 상대를 타자화, 적대시하는 모습은 마치 배타적 민족주의의 모습에 가까우나, 그러한 기제에 덧입혀진 과거의 모티브나 상징, 신화들의 출처가 동일하다는 점에서 이들은 민족보단 먼, 타민족보단 가까운모습을 띠며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또한 한민족의 개념 안에서 경쟁(충돌)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민족의 개념은 이러한 집단을 자애롭게 포용할 수 없어 보인다.

           앞서 앤서니 스미스가 지적했듯이, 반식민민족주의의 기제와 그 민족형성의 방법으로 창조된 민족정체성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특히 강력하고 탄력적일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종종 발현되는 강력한 민족(제일)주의, 국수주의의 모습은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강력한 민족주의적 정념은 상기했듯 그 기반이 약하다. 해방이후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한민족의 개념과 민족정체성은 그 역사가 짧으며, 시조에 있어 두 개(김일성민족-한민족)로 나누어져 있다.

한민족내부에서도 그 개념이 내재하고 의미(표방)하고 받아들여지는 기제들이 크게 두 가지(산업화, 민주화)로 나누어져 있으나 그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 이와 같은 상황에 더해, 한민족의 상징자원과 문화자원에 부착된 배달의 민족기제를 많이 접하지 못하였고, 인정하지 않는 한국의 젊은 세대들의 인식 속에서는 북한과 조선족은 이미 같은 민족의 범위에서 탈락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외국인, 다문화 가정, 다른 정치세력, 다른 성별에 대한 배타적 감정이 팽배해 있다. 또한 아직도 활발하게 공유되는 반식민민족주의적 기제로 인해 일본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앞서 언급한 모든 구분을 넘어서는 일치단결한 모습을 보인다. 자신과 다른 상대가 나와 다른 것은 다른것이나, 나와 같아야 할 것 같은 상대가 나와 다른 것은 흔히 틀린것으로 규정된다. 단일민족의 수사만 남고 합의가 없는 한민족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이다.’

 

 

6. 한민족의 컨센서스

 

한국사회에서 신자유주의, 개인주의의 확대로 소멸되거나 숨어버린 것으로 여겨지던 민족주의는, 필자의 눈에는 한국사회 안에서 역동적이고 탄력적으로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와 같이 표면적이고 폭발적인 작용은 아니지만, 비교적 짧은 역사와 분단, 단일한 개념 확립이 불가능 했던 정치적 상황, 또한 그 이후 컨센서스의 부재로 인해 가변성을 띤 한민족의 민족주의는 여전히 우리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으며, 민족 내부와 외부에 대한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유발 하라리는 TED강의에서 온건한 형태의 민족주의는 인간이 만든 가장 자애로운 이념 중의 하나로, 이를 기제로 서로 돌보고 협력한다. 다만 우리가 최고라는 생각의 민족주의는 개인으로 하여금 국가에 대한 배타적 의무감을 가지게 하는 파시즘으로 발전할 수 있다.”라 지적하였다.[6] 한민족의 민족주의에서도 이러한 온건한 형태의 민족주의가 가져오는 긍정적 효과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사람들은 정이 많다고 하였던가, 타민족과 비교를 해 본 적은 없지만, 뉴스에서 들려오는 훈훈한 미담들과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온정 어린 손길들, 이웃의 고통에 공감하고 함께 눈물 흘리는 모습들을 볼 때면 위의 명제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감사함과 자랑스러움이 함께 느껴진다. 그러나 과거로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되던 사회적 문제인 연고주의(혈연, 지연, 학연)와 같은 문제 등도 이러한 인정(人情)에 일정부분 기인한다는 점, 타민족과 국가를 배척하고, 외국인(다문화가정, 난민 등)을 혐오하는 것 역시 배타적 민족주의의 발로라는 지점에서 온건한 형태의 민족주주의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한국에서 강력한 역할을 수행하는 민족주의가 온건한 형태로 발현될 수 있다면, 수많은 사회 갈등이 보다 효과적으로 조정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본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사회에 필요한 것은 올바른 민족상이나 컨센서스라기 보다 포용성과 민주주의일 수 있다. 가스필드는 전체주의에 가까운 체제일수록 민주주의와는 다르게 상징반대특성을 강조하며 내부의 단결력을 공고하게 하나, 외부세력에게 배타적인 형태를 띨 것[7] 이라 지적했다. 다름을 인정하는 포용성과 그것을 조화롭게 펼쳐내는 민주주의가 성숙한 사회에서 민족주의는 타인을 보듬고 민족 구성원 전체를 보듬는 온건한 모습을 띨 것이다. 백범 김구는 민족의 행복은 부력, 강력, 계급투쟁, 이기심에서 오지 아니하고 문화의 힘과 민주정에서 온다 하였다. 적은 이미 물러갔으니 증오의 투쟁을 버리고 화합하자 주장했다. 분단된 한반도와 거리와 인터넷 상의 증오와 혐오를 관전하며 다시 한 번 자문해본다. 우리는 어떤 민족입니까?

 

 

참고문헌

 

 

이충렬, “한반도 삼국지: 박정희, 김대중, 김일성의 세개의 혁명과 세개의 유훈통치” (서울: 레디앙, 2015)

Andrew Heywood, 김계동 역, “국제관계와 세계정치” (서울: 명인문화사, 2013)

Joseph R. Gusfield, Symbolic Crusade. Status Politics and the American Temperance Movement(Urbana: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1963)



[1] Andrew Heywood, 김계동 역, “국제관계와 세계정치” (서울: 명인문화사, 2013) p. 171.

[2] 앤소니 기든스, 진덕규 역, “민족국가와 폭력” (서울: 삼지원, 1993), pp. 314-318.

[3] 김인중 역, 앤서니 D. 스미스, “족류: 상징주의와 민족주의” (파주: 아카넷, 2016), pp. 57-58.

[4] 앤서니 D. 스미스, 강철구 역, “민족주의란 무엇인가? : 근대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모색” (서울: 용의 숲, 2012) pp. 223~226.

[5] 이충렬, “한반도 삼국지: 박정희, 김대중, 김일성의 세개의 혁명과 세개의 유훈통치” (서울: 레디앙, 2015)

[6]https://www.ted.com/talks/yuval_noah_harari_why_fascism_is_so_tempting_and_how_your_data_could_power_it?language=ko(2018.01.22 검색)

[7] Joseph R. Gusfield, Symbolic Crusade. Status Politics and the American Temperance Movement

(Urbana: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1963), pp. 171-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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