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_btn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김정은 시대 핵무력의 상징화[1]

 

 

김진원(정책변동모형, gabriel9010@naver.com)

 

 

들어가며

 

201793일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는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WSJ 기자들은 914일에서 19일까지 평양을 방문해 현지 분위기를 취재한 뒤 북한으로부터의 편지(letter from north korea)’라는 제목의 기사를 25일 게재했다.[1] 이 기사에서는 북한의 핵에 대한 야망이 평양 풍경에 아로새겨져 있다. 북한의 핵 과학자들이 거주하는 새 아파트 옥상 꼭대기에 대형 원자폭탄 조각이 놓여 있고, 육교와 가로등 기둥, 빌딩 외관 곳곳에 핵폭탄 디자인이 새겨져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또한 고아원에서는 아이들이 로켓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고, 상점에서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기념하는 우표를 팔고 있다고도 보도하였다.[2] 위 기사뿐만 아니라 조선중앙통신에서 미래과학자거리를 현지지도하는 김정은을 비출 때도 승강기나 아파트의 문 등 곳곳에 원자마크가 새겨져 있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평양은 핵과 관련한 이미지로 점철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김정일 시대에는 볼 수 없었던 현상이면서, 북한이 핵을 비단 무기로서만 다루고 있지 않다는 것을 역설한다. 핵무기를 공개하고 홍보하는 것은 전략적 ·군사적 이점이 있다 할 수 없다. 북한은 고도화되는 핵무력에 대한 자신감을 기반으로 군사적 억제를 달성하고 외교(협상)전략의 수정, 군 구조의 재편(전략군 창설 등) 등 핵을 전략적·대외적·군사안보적 기제로 활용함과 동시에, 헌법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하고 핵을 주체의 핵보검으로 치켜세우며 이를 체제 내부에서 정치적 상징물로 사용하는 등 상징적·대내적·정치적 기제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이러한 상징정치적 경향은 극장국가라고도 평가되는 북한에 있어 새로운 형태의 정치적 경향은 아니다.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을 비롯한 백두혈통의 우상화에 상징정치적 기제를 활용하였으며, 미국과 일본에 대한 부정적 상징화를 통해 위기의식을 고조하고 대·내외적 정당성 획득을 추구하였다. 북한은 많은 목적을 위해 특정 대상에 대해 각종 상징기제를 정교하게 활용하고 있었고,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는 그것이 핵·미사일에 적용된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상징화의 경향에도 체제 승계과정에서의 특징이 발견되는데, 그것은 선대의 유훈이나 업적을 당대의 상징으로 삼아 정통성을 부각하는 경향이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총대와 관련한 역사를 자신의 선군정치에 대한 정당성의 한 부분으로 삼았다. 마찬가지로 김정은도 김정일의 업적을 핵으로 상정하고 이에 대한 상징화를 통해 김정일을 추앙하며, 자신과 체제의 정당성ㆍ정통성을 인민들에게 각인시키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본 원고에서는 북한에서 발견되는 새로운 현상인 핵에 대한 상징화를 분석함에 있어, 기존에 북한에서 이루어지고 있던 상징정치의 경향과 방법, 기제 등을 중심으로 분석할 것이다. 이를 위해 김일성 시대와 김정일 시대의 상징체계와 상징화(symbolization) 과정을 살펴보고, 현 시점까지 연구되어온 김정은 시대의 상징화 과정 역시 살펴보고자 한다. 과거 사례와의 통시적·공시적 비교를 통해 김정은 시대의 핵상징화가 가지는 특성을 더욱 명확히 드러내고자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김정은 시대 고도화되고 상징화된 핵이 가지는 상징성과 이미지를 분석하여 김정은 시대의 핵이 어떠한 성격을 가지는지 고찰해 보고자 한다. 북한의 상징체계는 크게 혁명전통에 대한 상징화와 지도자 개인에 대한 상징화로 대별되는데, 분량의 문제로 본고에서는 혁명전통에 대한 상징화를 중심으로 논하고자 한다.

 

 

북한 상징정치의 전통 : 혁명전통에 대한 상징화 총대

 

북한에는 다양한 정치적 상징체계가 작용하고 있다. 그들이 주장하는 이념과 그 이념을 주장하는 주체인 체제에 대한 인민들의 자발적인’ ‘순응을 위하여 백두혈통의 우상화와 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각종 상징에 위와 같은 이미지를 부착하는 것이다. 지도자의 초상화와 동상, 기념비적 건축물, 영화, 군중가요, 미술작품 등 이른바 선전선동을 위한 기제들도 모두 상징체계로 볼 수 있다.

 

기존의 문헌[3]에서 북한에서의 상징체계에 관한 논의를 종합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의 상징체계의 변화과정을 통해 체제의 변화과정을 조망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둘째, 북한의 상징체계는 민족국가의 수립 이전에 독점권력의 세습과 독재를 표명한다. 즉 혁명전통의 상징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셋째, 전체주의에서의 상징은 통합과 배제의 측면, , ‘우리 아니면 적의 관점에서 정치와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김일성 시대에는 해방공간에서 탄생한 북한과 그 안에서 권력투쟁을 통해 권력을 독점한 세력이 체제의 운영을 위해 새로운 상징을 창출(조작)하고 이를 작동시키는 단계였다는 평가가 존재한다. 특히 김일성시대의 상징 조작(manipulation)은 북한에서 유일체제가 수립되는 시점의 전후로 선전선동부문을 맡은 김정일에 의해 더욱 치밀하게 계획되고 추진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북한 주민들은 거부감 없이 상징을 받아들이는 단계, 즉 상징장치들이 작동(operation)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4]

 

이후 권력을 승계한 김정일은 권력구축과 체제유지과정에서의 통치전략으로써 우상화를 전개하였다. 이윤규(2014)에 따르면 우상화는 다음과 같이 전개되었다. ① 지도력 부각 ② 김정일 호칭 변화 ③ 가계우상화 및 개인 신격화 ④ 상징물 ⑤ 교육과 학습 ⑥ 출판물 및 문화예술창작 ⑦ 김정일 업적 날조 대내외 선전 ⑧ 남한주민들이 흠모한다고 날조하는 것 등이 있다.[5]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북한의 상징체계는 김일성 시대에 등장하여 김정일에 의해 체계화되어 발전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북한의 상징체계가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이어져 오는 권력 그 자체와 승계(세습)라는 통치행위를 표명하거나, 적어도 긴밀한 관계에 놓여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그리고 앞선 기존연구 검토에서 보았듯이 북한의 주요한 상징체계는 거의 모두 혁명전통의 상징화를 위해 복무하고 있다. 그렇다면 김일성 시대의 상징체계와 김정일 시대의 상징체계, 나아가 김정은 시대의 상징체계 사이에는 승계라는 통치행위의 정당화를 위한 전해져 내려오는 일종의 연결고리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연결고리는 승계행위의 정당성을 표명하는 만큼 선대에서 당대로, 다시 그 후대로 이어지는 공통의 기제 혹은 맥락일 것이다.

 

본 장에서는 북한의 상징체계가 관통하는, 혹은 대를 이어 표명하고 있는 공통된 기제 혹은 맥락을 총대철학으로 표현되는 북한의 군사우선주의로 보고 있는 권혁익(2013)[6] 의 주장에 동의하며 이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위 연구에서는 유교적 가족국가, 유격대 국가 등의 이미지를 창조하고 구성하는 관념들과 상징기제에 대해, 대척점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베버의 근대적 권력(권위)론과 전근대적 제의 및 권력문화를 바라보는 문화인류학적 관점을 결합한 시각으로 제시하고 있다. 위 연구에서는 많은 이념과 상징체계, 이미지 중 권력승계와 관련된 관념이자 상징을 총대정신으로 언급하고 있다.

 

북한이 주장하고 선전하는 총대에 관한 일화는 다음과 같다. 19266, 김일성이 14세일 때, 그의 아버지 김형직은 숨을 거두기 직전 부인인 강반석에게 권총 두 자루를 남기며 내가 죽은 다음 이 총이 나지면 재미가 없으니 땅속에 묻었다가 성주가 커서 투쟁의 길에 나설 때 주도록 하오.”라고 유언하였다고 전해진다. 이후 김일성은 훗날 이를 두고, “<지원>의 사상, 3대 각오, 동지획득에 대한 사상, 두 자루의 권총, 이것이 내가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유산의 전부였다. 그것은 모진 고생과 희생을 전제로 하는 유산이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그보다 더 훌륭한 유산이 없었다.” 라고 회고했다고 한다.[7]

 

이러한 권총의 승계는 김형직의 반일무장항전의 숭고한 뜻이 어린 혁명의 계주봉이었으며, “거기에는 칼이 없고 총이 없어 무참히 숨져간 이 나라 민중의 뼈에 사무친 원한, 무장으로 일본제국주의를 쳐물리치고 조국광복을 기어이 이룩하여야 한다는 겨레의 열망이 담겨져있었다.”고 묘사되어진다. 훗날 1952년 한국전쟁 당시 1121고지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던 김일성은 당시 11살이던 김정일에게 이 총을 다시 물려주며, “이 총이 혁명의 계주봉이며, 혁명의 승리를 담보해주는 방조자라 설명한다.[8]

 

북한은 위의 일화를 선군정치의 사상적 기반인 총대철학의 기원으로 주장한다. 선군정치가 북한의 문헌에서 처음 등장하는 것은 9712월이며, 본격적으로 제시된 것은 99우리 당의 선군정치는 필승불패이다.’[9]라는 공동사설에서부터이다.[10] 이후 0112월 로동신문의 정론에서 95년 신년, 김정일이 다박솔 중대에 대한 현지지도가 선군정치의 시원이었다고 언급하였다.[11] 그러나 그 이전인 93년 김정일은 신년사에서 약 30년 만에 ‘4대 군사노선을 강조하는 문장이 등장한 사실이 있다. 진희관(2008)은 김정일 시대의 군사우선주의적 기풍은 이 신년사에서부터 시작되었고, 그 결정체가 차후에 선군정치로 정립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12]

 

위의 사례를 통해 총대에 두 가지 관념(의미)가 부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는 우선 무력의 현신이라 할 수 있는 총대를 통해 혁명의 성공을 담보해주는 무력, 즉 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며, 둘째는 김형직에서 김일성으로,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이어지는 승계를 유형의 물질로 표현함으로써 대를 이어 무장으로 민족해방을 달성하기를 바라시는 절절한 념원과 기대를 간직하고 있는 총대혈통의 기원[13]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징화 작업을 통해 북한은 혁명과 그 혁명을 이끄는 카리스마적 권력의 연속성을 강조하였고, 총대는 선군의 전통이며 선군은 총대전통의 쇄신이자 현대적 실천으로 이미지화 하였다.[14]

 

총대(권총)이라는 상징물에 부여된 이미지는 반식민지 투쟁의 경험, 부성애적 감정, ‘민족해방의 신념 등이 압축되어있는 압축적 상징이다. 총대의 승계는 결국 권력의 승계인 것이나, 이는 개인이나 가문의 욕심이 아닌 혁명전통의 승계를 통한 최후의 승리민족해방을 보장하는 필수불가결하고 고결한 행위로 상징화된다. 또 주목해야 할 점은 김형직에서 김일성으로,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이어지는 총대의 승계는 그 기저에 북한의 군사우선주의적 맥락이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총대는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김정일이 선전선동의 책임을 맡은 이후부터 (당시에 구호로써의 선군정치는 제시되지 않았지만) 선군정치를 위시한 군사우선주의적 기풍의 완성을 위해 총대의 상징화를 선택하고 차용하여 만든 상징이다.

 

따라서 북한에서 총대는 독점권력 그 자체를 표명하며, 총대는 반식민적 무장투쟁에서의 승리를 통한 민족해방을 위해 승계(세습)되며, 인민들은 지도자를 결사옹위하는 총폭탄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총대철학을 기제로 한 혁명전통의 승계는 권력의 세습을 정당화시켰고, 군사우선주의를 중심으로 지도자와 체제, 혁명전통은 동일시 되었다.

 

참고적으로 독점권력의 계승이 총대의 전승을 통한 혁명전통의 계승으로 상징화된다면, 그 바통을 이어받은 최고지도자는 태양의 이미지를 선대로부터 물려받음으로써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공고히 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태양이 본디 가지는 강렬한 이미지는 빛, 밝음, 신성함, 유일함, 위대함, 강함, 남성성 등을 상징하기에 부족함이 없으며 이러한 긍정적 이미지는 곧 최고지도자에게 부착되어 범접할 수 없는 절대권력이라는 압축적 상징을 구성한다. 이러한 상징의 대물림은 곧 혁명전통을 승계한 지도자 개인에게 신성과도 같은 이미지를 부여함과 동시에 승계라는 통치행위 그 자체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김정은 시대의 상징화 기제 : 핵무력

 

김정은 시대의 상징체계 : -경제 병진노선

 

김정은은 집권 1년차에는 평양민속공원, 릉라인민유원지 등을, 2년차에는 문수물놀이장, 마식령스키장 등을 건설하는 등 인민생활과 관광, 여가, 체육활동을 중시한다는 자신만의 이미지를 쌓아나감과 동시에 북한에서 전통적인 상징체계인 김일성·김정일 동상 건립 등을 지시하기도 하였다.[15]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 구축이 곧바로 북한의 상징정치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기제로 상징화된다고는 할 수 없다. 앞선 논의에서 살펴보았듯이 체제의 보존을 담보하는 정치상징 안에는 이미지화된 이념이, 그 안에는 이념화된 현상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체제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핵심적인 이념, 그리고 그 이념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현상이 포함된 상징체계야말로, 북한의 독점권력이 상징화를 통해 이끌어내고자 하는 정동적 정향을 인민들에게 이끌어 낼 수 있는 핵심적이며 유용한 상징이라 할 것이다.

 

위와 같은 관점과 앞선 논의들을 바탕으로 도출해 낼 수 있는 김정은 시대의 상징체계의 핵심은 역시 혁명전통의 계승과 그 전통을 이어받은 지도자에 대한 상징일 것이다. 본 연구는 김정은 시대 북한에서의 상징체계 구축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핵·미사일에 대한 상징화라고 주장한다. 핵과 미사일에 대한 상징체계는 -경제 병진노선이라는 김정은 시대의 이념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 속에는 군사우선주의적(선군적)맥락 아래에서의 독점권력의 권력승계(총대 및 태양) 현상이 있다.

 

2013"경제건설 및 핵무력건설 병진노선"(-경제 병진노선)을 제시한 북한 로동당 당중앙위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은, “-경제 병진노선은 주석님(김일성)과 장군님(김정일)께서 제시하시고 철저히 구현하여 오신 독창적인 경제국방 병진노선의 빛나는 계승이며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의 심화발전”[16] 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선군정치와 마찬가지로 병진노선 역시 선대로부터 내려져 오는 혁명전통과 자립형 민족경제[17], 지도자 이미지 등의 계승이며, 북한의 상징화 된 핵은 위와 같은 이념들을 표명한다.

 

 

김정은 시대의 총대

 

총대라는 상징체계는 체제의 핵심 혹은 사활적 이익인 승계문제를 표명한다. 담론을 지배하는 독점권력이 위 상징체계의 상징화, 혹은 상징조작을 실시한 것은 권력세습에 대한 인민의 자발적인 순응을 유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총대라는 상징체계의 위상은 북한의 사회통합(자발적 순응)을 위한 다양한 상징체계 중에서도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총대(권총)는 반식민과 군사우선주의의 맥락 아래의 혁명전통을 백두혈통이 승계하는 일련의 과정과 그 정당성을 상징한다. 총대의 상징체계가 김정일 시대에는 선군정치를 표명했다면, 김정은 시대에 와서는 핵-경제 병진노선을 표명한다 할 수 있다.

 

김정은 정권의 핵보유에 대한 담론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핵 위협에 맞선 자위적인 조치로 요약된다.[18] 그러나 고유환(2016)은 북핵문제는 수령체제, 분단체제, 세계체제 등 복합적 요인이 결합되어 있다고 평가하며 항일무장투쟁에 근거한 군사국가인 북한은 김일성시대 경제·군사병진노선에 이어 김정일시대 선군정치, 김정은시대의 경제·핵병진노선으로 이어지는 사실상의 군사우선주의를 내세우고 만능의 보검이라는 핵무기 개발에 주력해 왔다고 분석한다. 북한 핵무장의 보다 근원적인 동기는 외부의 군사안보적 위협보다 내부의 백두혈통으로 이어지는 수령체제(유일체제)를 유지하고 계승하기 위한 물리적 강제력 확보를 위해[19]서라는 것이다.

 

양 주장의 갈등은 핵무기 개발의 주요한 동인이 어디에 있는지로 수렴된다. 하지만 무기로써의 핵무기의 내재적 의미에 방점을 둘 때, 그 효용은 국가안보나 정권안보에 한정되어 발현된다 하기 힘들 것이다. 상징체계로서의 핵-경제 병진노선과 그 기제들은 위 주장들을 모두 표명한다. 미국의 대북한 적대시 정책에 대한 반발은 반식민적 혁명전통으로 상징화되며, 체제 내부의 수령체제의 승계 및 유지 역시 총대정신으로 상징화 되는 것이다.

 

우선 체제 내부에서 사용되는 핵상징에 대해 살펴본다. 과거 김정일은 총대철학이라는 담론을 생산하고 이를 상징화함으로써 선군의 기초를 조성했다. 이후 2009년 헌법을 개정하며 선군사상을 핵심 이념으로 내세웠다. 이는 군사우선주의 정책인 선군정치에 대한 의지를 국가의 최고위법인 헌법이 가지는 상징성으로 표출한 것이다.[20] 마찬가지 관점에서 김정은 시대의 북한도 2012년 사회주의헌법을 개정하면서 서문에 자신들이 핵보유국의 지위를 가짐을 명시하였다. 또한 20133월에는 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국가전략으로 핵능력과 경제발전을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핵-경제 병진노선을 공식적으로 채택하였으며, 다음날인 41일 제정한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한 법’[21]을 통해 헌법과 법률이 가지는 권위를 통해 상징성을 표출하기도 하였다. 이는 북한이 핵개발을 공식화하고 유엔 역사상 가장 강력한 경제제재 아래에서도 공개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기에 가능한 상징화 작업이었다.

 

다음은 대외적으로 사용되는 핵상징에 대해 살펴본다. 북한의 정치문화를 설명할 때에 유격대국가의 정치문화로 바라보는 시각이 다수 있다. 유격대국가는 사회주의의 아류인 북한의 국가사회주의체제 위에 성립된 특수한 이차적 구조물”[22]이다. 유격대 국가의 이미지는 북한에 부착된 특유의 군사우선주의가 엿보이는 개념이다. 같은 맥락에서 북한 외부의 많은 학자들은 북한이 평시 재래식 전략에서도 공격적이고 호전적인 군사적 문화와 패턴을 보여주었기에 핵전략에 있어서도 고도의 위험감수 의지를 가지고 군사력을 사용하는 집단이라고 인식하고 있다.[23] `김태현(2016)은 북한의 군사전략에는 군사적 모험주의의 전략문화가 자리잡고 있다고 평가하며 최근에는 주변국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도발을 통해 모험주의의 이미지, 즉 평판을 더욱 공고히 하는데 성공하였다[24]고 평가하였다. 이러한 군사적 모험주의를 더욱 위험한 무기체계인 핵무기에 적용하였던 것도 역설적으로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 핵을 공개화하고 상징화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으며, 상대방에게 억제 및 대응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과 갈등의 여지를 주는 등 전략적 운신의 폭을 넓혀 주었다.

 

살펴보았듯이 이처럼 김정은 시대의 총대로써 상징화 된 핵·미사일은 과거 상징화되지 않았을 때 보다 더욱 공식적이고 적극적으로 체제내부는 물론 외부의 행위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정은에게 승계된 총대는 맥락적으로나 실재적으로나 점차 발전적이며 완성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될 확률이 높으며, 그것은 곧 혁명의 완수와 고난종결의 희망을 상징하기에 인민들의 자발적 순응이라는 정향을 불러오기에 적합한 상징체계이다. 즉 핵-경제 병진노선과 그 기제에 담긴 상징들은 북한에 입장에서 합목적성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혁명전통과 지도자에 대한 상징적 기제를 뒤집어쓰고 더욱 공고화된 북핵에 대응해야하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이와 같은 경향 역시 정확히 인지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1] https://www.wsj.com/articles/letter-from-north-korea-what-life-looks-like-as-nuclear-crisis-mounts-1506097544(검색일: 2017. 09. 26)

[2] https://www.wsj.com/articles/letter-from-north-korea-what-life-looks-like-as-nuclear-crisis-mounts-1506097544(검색일: 2017. 09. 26)

[3] 이우영, "북한사회의 상징체계 연구 : 혁명구호의 변화를 중심으로," 『통일연구원 연구총서』, 12월호 (2002), pp. 2-4; 조은희, "북한 혁명전통의 상징화 연구," 『한국사회학회 사회학대회 논문집』, 2007.6 (2007), pp. 705-706; 조현수, “상징과 정치: 민주주의 체제와 전체주의 체제의 상징에 대한 비교분석,” 『한국정치연구』, 19, 3(2010).

[4] 이승현, "김일성·김정일의 상징정치 : 구호와 상징조형물을 중심으로," 『한국과 국제정치』, vol. 28, no.2 (2012), p. 103.

[5] 이윤규, "북한 김정은 독재체제에서의 우상화 : 김정일ㆍ김정은 우상화 비교분석을 중심으로," 『전략연구』 통권 제63 (2014), p. 180.

[6] 권헌익, 정병호 『극장국가 북한 : 카리스마 권력은 어떻게 세습되는가』 (서울: 창비, 2013)

[7] http://webcache.googleusercontent.com/search?q=cache:To9KXpGdwJwJ:www.uri
minzokkiri.com/index.php%3Fptype%3Dbook%26no%3D2443%26pn%3D11+&cd=11&hl=ko&ct=clnk&gl=kr(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 2장 선군의 시원이 마련되던 나날에, 검색일: 2017. 11. 02)

[8] 평양출판사,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 제2 (평양: 평양출판사, 2008), pp. 378-379; 권헌익·정병호(2013) p. 124. 에서 재인용.

[9] 고상진,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선군정치의 근본특징.” 『철학연구』 제1(1999)

[10] 정성장, “김정일 시대 북한의 선군정치: 선군정치와 권력엘리트의 변동을 중심으로,” 『한국정치학회 연례학술회의 발표논문집』 (2007), p. 2.

[11] 진희관, “북한에서 선군의 등장과 선군사상이 갖는 함의에 관한 연구,” 『국제정치논총』 vol. 48, no.1 (2008), pp. 378-379.

[12] 위의 책, pp. 380-381.

[13] 오현철, 『선군령장과 사랑의 세계』 (평양: 평양출판사, 2005), p. 46; 권헌익·정병호(2013) p. 139에서 재인용.

[14] 권헌익·정병호(2013), p. 139.

[15] 정유석, 곽은경, “김정은 현지지도에 나타난 북한의 상징정치,” 『현대북한연구』, vol. 18, no.3 (2015), pp. 191-192.

[16] 『김정은 동지께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20133월 전원회의(2013. 3. 31)에서 하신 보고』 (2013. 4. 2).

[17] 임수호 외, "북한 경제개혁의 재평가와 전망 : 선군경제노선과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KIEP 연구자료』 제15(2015), p. 22.

[18] 구갑우, "북한 핵 담론의 국제정치 : 북한적 핵 개발의 이유와 김정은 정권의 핵담론" 『동향과 전망』 제99(2017), p. 108.

[19] 고유환, "북한 핵보유 요인에 관한 역사-구조적 접근," 『북한연구학회보』 vol. 20, no.1 (2016), p. 66.

[20] 곽은경, "북한 사상무장 수단으로서의 상징전략 : 선군정치를 중심으로," 『현대정치연구』 vol. 9, no. 2 (2016), p. 166.

[21] Korea Central News Agency, “Law on Consolidating Position of Nuclear Weapons State Adopted.” (1 April 2013. 1.); 박창권, "북한의 핵운용전략과 한국의 대북 핵억제전략," 『국방정책연구』 vol. 30, no. 2 (2014), p. 169. 에서 재인용.

[22] 와다 하루키, 서동만·남기정 역, “북조선” (서울: 돌베개, 2002), pp. 30-34;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 『북한연구방법론』 (서울: 한울아카데미, 2003), p. 281. 에서 재인용.

[23] Terence Roehrig, “North Korea, Nuclear Weapons and the Stability-Instability Paradox,”

The Korean Journal of Defense Analysisvol. 28, no. 2 (2016), p. 190; 박창권, “북한의
핵운용전략과 한국의 대북 핵억제전략,” 『국방정책연구』 vol. 30, no. 2 (2014)

[24] 김태편, “북한의 핵전략: 적극적 실존억제,” 『국가전략』, vol. 22, no. 3 (2016), p. 21.



[1] 본 원고는 김진원, 정한범(교신저자)김정은 시대 핵의 정치적 상징화’ “세계지역연구논총” vol.35, no.4 (2017)
중 필요한 내용을 발췌하여 작성한 것임을 밝힙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이론ㆍ개념 사회과학 연구 통계자료 사이트 모음 우리가치 2018.03.12 1331
공지 과도기정의 (Transitional Justice) 관련 유용 사이트 admin 2016.01.12 119
공지 국제정치 공부의 필수 웹사이트 링크 모음 mj 2015.04.08 1699
189 미중경쟁시대 강대국 동맹 구조의 변화: 유지, 균열 또는 강화 mj 2018.10.12 11
188 애도의 정치 - 안성준 mj 2018.10.12 6
187 [자료] [English] 2006 Angola - Cabinda MOU on Peace and National Reconciliation in Cabinda province mj 2018.06.04 26
186 [우리가치 4월/10호] 트럼프 시대, 동남아시아 국가의 대응전략: 남중국해 문제를 중심으로 WalkerhoduJ 2018.04.23 27
185 [우리가치 4월/10호] 200년 전 해적이 남겨놓은 유물 - ATS를 통해 살펴보는 오늘날 국제인권법의 단상- WalkerhoduJ 2018.04.23 46
184 [우리가치 4월/10호]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 빼기 WalkerhoduJ 2018.04.23 37
183 [우리가치 4월/10호]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 빼기 WalkerhoduJ 2018.04.23 24
182 Stephen Krasner - Rules of Sovereignty mj 2018.04.16 20
181 [라이베리아] 찰스테일러 - 블러드다이아몬드 전범 mj 2018.04.16 28
180 [코트디부아르] 로랑 그바그보 mj 2018.04.16 12
179 [캄보디아] 키우 삼판 - 킬링필드 대학살 책임 종신형 mj 2018.04.16 19
178 칠콧 보고서 (Iraq Inquiry) 우리가치 2018.03.11 13
177 [북리뷰] Spiral Model in Transitional Justice (1999, Risse, et.al) mj 2018.02.16 18
176 [우리가치18년1월/9호] 국제정치와 이데올로기: 미중경쟁의 새 시대 WalkerhoduJ 2018.02.03 35
» [우리가치18년1월/9호] 김정은 시대 ‘핵무력’의 상징화 WalkerhoduJ 2018.02.03 41
174 다시, 제 1 공화국 mastad 2018.01.31 66
173 What is the Responsibility to Protect? [R2P란 무엇인가?] - Michael Walzer 마이클 월저 mj 2018.01.16 27
172 RESPONSIBILITY TO PROTECT OR RIGHT TO PUNISH? HUMANITARIAN INTERVENTION AND ITS CRITICS mj 2018.01.03 25
171 [우리가치 12월/8호] 국제법… 어제 우리를 죽였던, 하지만 내일 우리를 살릴 무기 file WalkerhoduJ 2017.12.13 49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Next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