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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법

어제 우리를 죽였던, 하지만 내일 우리를 살릴 무기

 

김명정(과도기정의, k2they2@gmail.com)

 

 

헤이그 특사단을 비통케 한 국제법

많은 자들이 정의와 평화를 이야기 한다. 그 이야기는 역사가 시작되었던 어느 먼 시절부터 그러했다. 하지만 힘 앞에서 정의와 평화는 그저 말을 위한 말로 그 생명력을 다하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수 없이 목격했다. 그러한 불편한 진실을 온 몸으로 받아친 자들 중에는 우리에게 꽤나 친숙한 헤이그 특사단이 있다. 고종 황제는 일본의 무력을 앞세운 협박과 공갈로 체결된 을사늑약(1905)의 부당함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된 제2차 만국평화회의(World Peace Conference)에 이준, 이상설, 이위종을 파견한다. 그들은 두 달 가까이 바다를 건너고 대륙을 달려 회의가 개최된 열흘 후쯤 헤이그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일본과 영국의 제지를 받아 회의장에 들어 갈 수 없었다. 그들은 절망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회의장 밖에서 세계 언론과 접촉을 시도하며 대한제국의 비통한 실정을 호소하였다. 그러나 구체적인 성과는 없었다. 그리고 평화회의 기간 중에 이준 열사는 네덜란드 숙소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고 일본은 헤이그 특사 파견을 구실로 고종을 강제 퇴위시켰다. 1910한일병합조약으로 대한제국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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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국이 국제사회에서 한반도에 비수를 꽂을 수 있었던 힘은 조약으로부터 나왔다. 일본제국은 일찍이 국제사회의 작동원리를 깨닫고 불법과 무력을 일삼을 지라도 조약이라는 모양새를 띄우며 외교를 행했다. 이 당시 러시아의 세력 확장 속에 영국과 미국은 한반도를 둘러싼 일본과 러시아의 세력다툼에서 일본에게 힘을 밀어주었고,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904년 서울을 점령하였다. 그리고 일본제국은 국제사회 강대국들과 이미 여러 조약을 통해 한반도 장악을 승인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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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목소리가 담기지 않고 우리의 주권을 일본에 넘긴 일제와 강대국 간의 조약은 우리에게 분함, 억울함, 그리고 서러움을 안겨다 주었다. 이러한 공식 문서는 전혀 합리적이거나 신사적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폭력적이고 강제적인 힘의 투사를 합리화 시켜주는 비열한 수단일 뿐이었다.

 

국제법의 개과천선

이제 시공간의 축을 2017년 세계무대로 돌려보자. 정의와 평화를 외치는 자들은 여전히 많다.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힘의 논리 또한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오늘날 세계무대는 제국주의 시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띄고있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헤이그 특사단이 겪었던 수모와 아픔을 더이상 겪지 않는다. 다른 약소국 또한 자신들의 필요를 국제사회에 관철시킬 다양한 채널들을 제공받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변화에 크게 기여한 것은 세계정치의 패러다임 변화에 따라 발전된 조약이다. 세계2차대전이 끝났을 때만 하더라도 국제정치의 본질은 에 있다라고 주장하는 현실주의 담론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민족자결주의로 새로운 국가들이 탄생하며 자연스레 발전한 국제법, 탈냉전 후 급속히 부상한 인권문제, 그리고 자유주의, 포스트모더니즘, 페미니즘, 비판이론, 탈제국주의 등의 학문적 발전에 따라 국제정치 담론은 현실주의에서 자유주의로 힘의 우세가 넘어가게 된다.[1] 세계화 속 국제적인 경제교류와 국가 간 상호의존도가 높아졌으며 자유주의와 다자주의를 기반한 국제제도와 기구도 활성해졌다. 자연스레 만이 중시되었던 국제정치 어젠다에 국가들이 협력해야 하는 사안들이 많아졌고 '도덕과 정의'도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국제법은 협력의 원칙, 피해 금지 원칙, 인간의 존엄성, 형평과 세대간 형평, 책임(accountability)을 근본 규범으로 삼으며 발전하였고 국제법이 규율하는 조약의 성격도 제국주의 시대와 다르게 변화해갔다. 대표적으로 1947년에 설립된 국제법위원회(International Law Commission)조약의 체결, 적용, 해석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관하여 국가들간 통일된 규칙이 있어야 하겠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조약관계법 성문화작업을 구체화시켰고, 그 노력의 결실로1969조약에 관한 원칙과 규칙을 모두 망라는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The Vienna Convention on the Law of Treaties)이 채택되었다.[2] 따라서 을사늑약과 같은 불법적 조약을 방지할 수 있는 기준이 생겼고 국가들은 힘의 세기가 달라도 통일된 이 규칙에 따라 조약을 맺게 되었다. 이는 국제관습법상 이 협약을 가입한 국가와 미가입국 모두에게 적용된다. 따라서 비열한 힘의 합리화를 위했던 조약이 형평성을 맞추는 도구로 변모한 것이다.

 

이 협약의 당사국은국제관계의 역사에 있어서 조약의 근본적 역할을 고려하고제국가의 헌법상 및 사회적 제도에 관계없이 국제법의 법원으로서 또한 제국가간의 평화적 협력을 발전시키는 수단으로서의 조약의 점증하는 중요성을 인정하며자유로운 동의와 신의성실의 원칙 및 「약속은 준수하여야 한다」는 규칙이 보편적으로 인정되고 있음에 유의하며다른 국제분쟁과 같이 조약에 관한 분쟁은 평화적 수단에 의하여 또한 정의와 국제법의 원칙에 의거하여 해결되어야 함을 확인하며, 정의가 유지되며 또한 조약으로부터 발생하는 의무에 대한 존중이 유지될 수 있는 조건을 확립하고자 하는 국제연합의 제국민의 결의를 상기하며제국민의 평등권과 자결모든 국가의 주권 평등과 독립제국가의 국내문제에 대한 불간섭힘의 위협 또는 사용의 금지 및 모든 자의 인권과 기본적 자유에 대한 보편적 존중과 그 준수의 제원칙등 국제연합 헌장에 구현된 국제법의 제원칙에 유념하며이 협약속에 성취된 조약법의 법전화와 점진적 발전은 국제연합헌장에 규정된 국제연합의 제목적 즉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국가간의 우호관계의 발전 및 협력의 달성을 촉진할 것임을 확신하며,관습국제법의 제규칙은 이 협약의 제규정에 의하여 규제되지 아니하는 제문제를 계속 규율할 것임을 확인하여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 서문

 

21세기의 국제법: 평화와 정의를 위한 필수품

조약은 형평성을 맞추는 것을 넘어 더 나아가 국가들이 서로 협력하고 공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해주고 있다. 로버트 액셀로드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은 협력의 선결 조건으로 관계의 연속성상호성을 꼽는다. 국제사회에서 국가들은 한번 보고 다시는 안볼 사이가 아니기에 첫 번째 조건은 자연스레 성립한다. 그런데 상호성의 문제, 즉 내가 호의를 베풀면, 상대방도 호의를 베푸는 것은 항상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대게 여기서 힘의 논리가 투영되곤 한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조약이다. 조약으로 상호주의를 계약함으로써 국가들 간에 배신 대신 협력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호혜주의에 입각한 국가 간의 무역이라 할 수 있다. 국가 간에 경제분쟁이 있을 경우에는 세계무역기구(WTO)가 호혜주의, 투명성, 예측 가능성을 기본원칙으로 이를 중재하고 있다. 이런식으로 오늘날의 조약은 힘의 강압이 아닌 국가 간의 협력을 위해 사용되며, 이로인해 국가들은 보다 평화로운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조금씩 발전을 거듭한 국제법은 정의를 위한 잣대로도 훌륭하게 사용되고 있다. 위에 언급된 WTO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제법은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법은 힘이 없다라는 말은 옛 말이 되었다. 법적 구속력의 범위가 계속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가장 극명히 보여주는 것이 국제재판소이다. 현재 국제재판소는 흔히 알고 있는 국제사법재판소(ICJ), 국제형사재판소(ICC)를 비롯하여 총 24개가 있으며 그 수는 늘어나고 있다.[3] (이는 지역재판소도 포함하는데 아쉽게도 아시아에만 지역을 대표하는 인권재판소가 없다.)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의 국제법 전문가 Karen J. Alter 교수는 국제재판소의 성격을 구식(Old style)”신식(New style)”으로 구분하며 초반에 만들어진 구식 국제재판소들은 선택적인 관할권(optional jurisdiction)만 있고 국가만이 소송을 일으킬 수 있었다면, 최근 신생된 국제재판소들은 강제관할권(compulsory jurisdiction)이 있고 비국가 행위자도 소송을 시작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4] 그만큼 국제법의 재량이 커졌음을 의미한다. 2016 5 30, ‘아프리카의 피노체트히세네 하브레 차드 전 대통령이 아프리카특별재판소(Court of Justice of the African Union, EAC) 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은 것, 2017 11 30일 보스니아 전범 슬로보단 프랄략이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항소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고 독극물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은 국제법의 위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나가며                                 

왕의 명을 받아 네덜란드 헤이그까지 건너갔으나 회의장에 입장조차 거부당했던 헤이그 특사 이준, 이상설, 이위종 열사가 지금 대한민국과 지구촌 모습을 본다면 어떠한 느낌이 들까? 세계 강대국의 반열에 올라G20, OECD국가로서 당당히 우리의 자리를 지키며 우리 사람이 국제기구의 수장을 비롯한 중요 직책을 맡는 것을 보면 그 서러움이 씻길까. 이준 열사 일행의 헤이그 활동을 적극 지원하였던 윌리엄 T. 스테드는 미국의 철강재벌 카네기를 설득하여 상설중재재판소(PCA)가 들어갈 평화궁(Peace Palace)을 짓게 하였다. 스테드의 동상도 들어서 있는 이 평화궁은 현재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사용하고 있다.  그와 헤이그 특사들이 품었던 정의와 평화에 대한 마음은 당시 제국들의 힘에 의해 무참히 짖밟힌 듯 싶었으나 사실 그들의 노력이 오늘날 세계 정의와 평화를 위한 가장 상징적인 국제재판소의 주춧돌이 된 것이다. 우리는 앞에 장사 없다는 식의 패배주의적이고 비관적인 시각보다는 정의와 평화를 위한 노력들이 실제 가시적인 발전을 이뤘음을 인식하고 많은 변화를 거쳐 우리에게 꽤나 유용하고 정의로운 도구로 거듭난 국제법을 더 연구하고 활용하여 우리의 권리를 지키고 더 나아가 더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2017년 헤이그 국제법 아카데미 국제공법과정 참관기 (김혜인, 국제법동향과실무2017)

"Ethics and Morality in International Relations"(Joseph Hoover, 2015 Oxford Bibliographies)

 The New Terrain of International Law: Courts, Politics, Rights (Karen J. Alter,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4)



[1] "Ethics and Morality in International Relations"(Joseph Hoover, 2015 Oxford Bibliographies)

[2] 2017년 헤이그 국제법 아카데미 국제공법과정 참관기 (김혜인, 국제법동향과실무2017)

[3] The New Terrain of International Law: Courts, Politics, Rights (Karen J. Alter,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4)

[4] Ib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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