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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발전은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가?


 


 


고경대(북한과학기술동향, holyone70@hotmail.com)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내가 제일 먼저 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한 번 쯤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가만히 눈을 감고 오늘 아침 잠자리를 되돌아 본다. 눈이 반쯤 감긴 상태에 어디선가 희미한 소리가 들려온다. 그 희미한 소리는 때론 나의 귀를 간질거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아직 잠에 취한 나의 신경을 마구 흔든다. 나의 머릿 속 한 쪽은 무시하고자 하지만, 나의 의식과 관계없이 어느새 나의 손은 주변을 더듬으며, 무엇을 찾기 시작한다. 기나긴 탐색 끝에 반짝이는 긴 물체를 잡는다. 그렇다. 스마트폰이다. 사람들에 따라 정도는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스마트폰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그럼, 20년 전 아침은 어떠했을까? 필자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자명종과 어머니의 목소리와 함께 시작했을 것이다. 그럼, 40년전에는 찹쌀 떡과 메밀묵? 80년전에는 닭 소리? 그럼, 20년후에는 시리나 에코와 함께 아침을? 한 세기 안 되어서 우리의 아침 모습은 광속에 가깝게 바뀌었다. 과연 어떠한 모습이 가장 우리에게 행복감을 주는 아침인가?


르네상스 이후로 모든 학문의 관점이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바뀌면서 소수에 의해 독점되던 기술과 과학의 지식이 대중화 되기 시작되었고 17, 18세기 대항해시대를 통해 대중들의 삶 속에 파고들기 시작했다. 19세기 산업혁명은 대중 전체의 삶의 형태를 송두리채 바꾸었으며, 20세기초 두차례의 세계대전들을 통해 과학과 기술의 강력함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게 되었다. 그 결정력은 두려움 혹은 경외함으로 그 중요성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각인시켰다. 그 두려움은 잘못된 과학과 기술의 사용으로 언제가 인류가 멸망하거나 노예가 될 거라는 디스토피아의 사상의 기반이 되었고, 경외함은 과학과 기술이 인류를 행복한 길로 인도하리라는 유토피아의 사상의 모태가 되었다. 과연 우리가 사는 지금은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우리에게 친숙한 영화들이나 소설들은 통해 한번 판단해 보기로 한다.


가장 디스토피아를 대표하는 영화들로 터미네이터와 매트릭스가 있다. 터미네이터의 줄거리는 1997년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과 로보트들이 인류를 공격하여 노예로 만들고 그 압제 하에 살던 인류를 구하기 위해 존코너가 반군을 조직하고 대항하여 전세가 역전되자 인공지능이 암살자를 1984년에 보내어 그 어머니인 사라 코너를 없애려고 하자 반군의 일원인 카일 리스를 보내 암살을 막는 내용이다. 이 영화를 보면 30년전 사람들은 1990년 후반에 인공지능이 나타나리라 예상했던 것을 알 수 있다. 386세대에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예상은  틀렸고 20년이 지난 지금에 우리의 삶에 영향력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지금 20-30대가 자녀를 양육하기 시작할 때 쯤 확실한 영향력을 행사하리라 예상된다. 과연 그 때, 알파고는 스카이랩이 되어 있을까? 아니면 자비스가 되어 있을까?


빨간약 줄까 파란약 줄까로 유명한 매트릭스는 가장 현실과 관계가 깊다. 역시 기계와 인간간의 전쟁이 발생하고 인간이 패배함으로 살아남은 인간들은 지하로 피해 시온이라는 도시를 건설하여 살고 있다. 승리한 기계들은 생존과 인간에게 복수 겸 해서 대체 에너지원으로 인간의 생체 에너지를 쓴다. 생체 에너지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가상공간인 매트릭스를 만들어 인간의 신경 조직들을 연결시켜 그 공간에 실제 살고 있도록 느끼게 하여 뇌를 활성화시킨다. 매트릭스에 갇힌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시온에 있는 인간들이 나서며 이를 저지하기 위해 기계들이 맞선다는 내용이다. 현대 자본주의를 비판한 내용일 수도 있고, 다른 의미들이 숨겨 있을 수 있지만, 가상 현실은 거대한 IT 기업들의 주요 프로젝트들 중에 하나다. 과연 가까운 미래에 가난한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자기의 생체 에너지를 파는 시대가 오지는 않을까? (참고로 네이버 웹툰인 꿈의 기업을 보면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영화 가타카는 보다 현실적인 듯하다. 유전자 조작이 가능한 미래, 아이들은 인공배양을 통해 여러가지 우수한 유전자들과 배합하여 태어난다. 부모들의 우수한 유전자들만 물려받아 태어난 아이들은 병에도 안 걸리며, 모든 일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인다. 그러나, 주인공은 어머니가 인공배양이 아닌 직접 낳은 아이로서 여러가지 열성 유전자를 가지며, 특히 심장이 약하다. 그의 꿈은 우주 비행사이지만, 모든 것이 피를 통한 유전자 검사로 결정되는 사회에서 그의 도전은 무모하기만 하다. 현재‘크리스퍼 유전자 가위(CRISPR-Cas9)’를 이용해 인간 배아에서 유전질환인 비후성 심근증을 유발하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정상 유전자로 고치는 데 성공했다. 이 배아를 자궁에 착상시킬 경우 건강한 태아로 자랄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의 자식들의 잠재적인 병들을 고칠 수 있다면 과연 어떤 부모가 반대할 수 있을까? 심지어 자기의 아이의 백혈병을 고치기 위해 동생을 임신해 기증자로 쓰는 세상에서


위의 몇가지의 예를 살펴 보면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는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작용할 경우가 많다. 터미네이터를 예로 들어 보자. 처음에 스카이랩의 개발 목적은 군사용이었다. 만약 스카이랩을 군사용이 아닌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거나 사회의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는 도움을 주는 목적으로 개발했다면, 아마 그는 자비스와 같이 사람들은 돕는 영웅으로 태어났을 것이다. 가타카에서 처럼 오직 본인의 자식들만을 위한 것이 아닌 병으로 고통받는 이웃으로 눈을 돌리며, 보다 이타적으로 기술을 쓴다면, 질병으로 더 이상 고통받지 않는 유토피아가 올지도 모른다. 마치 메트릭스의 빨간약,파란약 처럼 이미 우리의 손에 놓여 있으며, 이제는 미래를 먼저 볼 수 있는 전문가들이 깊이 고민하고 자세히 대비할 문제라고 생각되어진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이러한 분야에 전문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사람들을 길러 낼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필요함을 더욱 뼈저리게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