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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민주화 과도기 속 정의와 인권

- 로힝야족 탄압으로 바라보는 미얀마의 미래

 

김명정

 

1. 들어가며

 

         ‘부패한 군부독재와 쇄국정책으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채 버티고 있는 나라,’ 어느 국가가 떠오르는가? 어쩌면 우리와 지리상으로 가장 가까운 북한이 떠오를지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 이야기할 국가는 미얀마다. 미얀마는 북한과 같이 강한 군사 정권에 의해 고립되고 가난하게 버텨왔지만 최근 급격한 민주화의 길을 달리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미얀마가 요즘 국제사회의 몰매를 맞고 있다. 바로 소수민족 로힝야족을 대상으로 한 미얀마 정부의 ‘인종청소,’ 즉 극심한 탄압 때문이다. 국제사회는 인권과 정의를 외치고 노벨평화상까지 수여한 아웅 산 수 치(Aung San Suu Kyi)가 권력을 잡은 미얀마에서 이러한 사태가 발생한 것을 지켜보며 그녀를 위선자라고 손가락질하고 분노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과연 그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로힝야족 탄압문제는 미얀마의 역사, 사회, 종교, 경제, 정치, 안보 문제를 모두 꿰뚫는 매우 복잡한 사안이다. 미얀마라는 국가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가 없이는 단편적으로밖에 알 수 없는 사안이며, 따라서 지도자의 역량 부족만을 탓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본 글은 민주화 과도기라는 특수한 배경에서 더 극심하게 치닫고 있는 미얀마 로힝야족 탄압문제를 여러 각도로 살펴보고 이를 통해 수 치 여사를 둘러싼 질문들과 이 인권문제에 대한 대안을 논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미얀마의 민주화 과정, 로힝야족 사태를 향한 국제사회의 비난, 로힝야족 사태 분석, 마지막으로 대안 제시 순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고자 한다.  

 

2. 미얀마의 민주화 이야기

 

민주화의 배경

 

         미얀마는 1948년 영국에서 독립되고 민주주의 시절을 보낸다. 하지만 1962년 네 윈 장군의 쿠데타 이후 최근 53년간 부패한 군부독재와 무능력한 미얀마식 사회주의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어 온 국가이다. 국민은 민주화를 위해 군정부와 맞서 싸우며 많은 피를 흘렸고, 대표적으로 시민 3,000여 명이 목숨을 잃은 88 8 8일 발 ‘8888 민주화 항쟁’이 있다. 이후 1990년 자유 총선에서 여당 국민민주연맹(NLD)이 승리하여 민주화의 조짐이 보였으나, 군부는 이를 무효화 시키고 무력으로 진압하였다. 이렇게 오랜 시간 강압 통치를 하던 군 정권 ‘땃 마도(Tatmadaw)’는 2010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민주화 시동을 건다. 이 배경의 핵심은 경제다. 미얀마는 비민주적 강압 통치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강도 높은 경제제재를 받고 있었고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려왔다. 가난한 내수시장으로부터 기대할 것이 없던 권력층은 중국의 투자와 원조로 버티고 있었지만 이 역시 부족했기 때문에 외부시장의 투자와 원조를 위한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게다가 중국과의 관계에 적신호가 켜지자 그 시기는 앞당겨졌다. 중국은 원조의 대가로 미얀마의 풍부한 자원을 개발하고 벌목 등을 하며 이득을 누렸는데, 이러한 개발과 투자는 환경고려 없이 이루어져 환경문제가 심각했을 뿐 아니라 모든 건설에는 현지인이 아닌 중국인을 고용하여 이루어졌다. 지역사회에 득보다 해가 컸던 중국의 모습에 미얀마 국민의 반중 정서는 커졌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양국 관계에 금이 간 것은 미얀마의 중국계 소수민족과 관련된 이유 때문이다. 중국계 소수민족 코캉족 반군은 미얀마로부터의 분리하여 중국과의 통합을 요구하고 있는데, 중국이 이들에게 무기와 자금을 공급한 것이 사실화되었으며, 미얀마 정부가 이들을 소탕하여 4만여 명의 난민이 중국으로 유입된 것도 문제가 되었다. 이렇게 국제사회의 제재 속 어려운 경제와 그나마 의지했던 중국과의 관계에 금이 가자 미얀마 군정권은 친중 노선을 버리고 서방 세계와의 관계개선을 꾀하고자 민주화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민주화 과정, 수 치가 국가 수장이 되기까지

 

         민주화 결정을 내린 군정부는 2010 11, 20년 만의 총선을 실시한다. 하지만 선거 하루 만에 친군부성향의 연방단결발전당(USDP)이 전체의석의 86%를 차지했다고 발표되고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 선거로 인해 군부 출신인 테인 세인(Thein Sein) 민간정부(~2016 3)가 출범한다. 의혹투성이의 선거였지만, 어찌 됐든 미얀마는 민간정부의 주도로 급격한 개혁개방과 변화의 물결을 맞이하게 된다. 가장 먼저 2010 11, 수 치 여사가8년 만에 가택연금에서 해제된다. 2011년에는 많은 정치범 수용자들이 자유를 얻었고, 2012년 미국은 경제제재 단계를 낮추고 유럽연합은 모든 경제제재를 해제하였다. 2013년에는 50년 만에 민간언론이 허용되었고 스마트폰 보급도 확대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2015 8, 다시 열린 총선에서 아웅 산 수 치 여사가 이끄는 여당 NLD는 승리하였고, 아웅 산 수 치는 미얀마 최고 실권을 잡게 되었다. 헌법상 외국인 배우자나 자녀를 두었을 경우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수 치를 겨냥한 헌법 때문에 그녀를 대신하여 그녀와 옥스퍼드 대학에서 함께 수학하고 민주화 운동 경험이 있는, 그리고 한때 수 치 여사의 기사와 수행비서까지 지냈던 틴 쩌(Htin Kyaw)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아웅 산 수 치는 국가자문역(State Counsellor)이라는 호칭을 얻게 되었다.




3. 로힝야족의 인권문제와 아웅 산 수 치의 대응

 

         아웅 산 수 치 국가자문역의 리드 하에 민주화와 개혁은 더 박차를 가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얼마 안 가 더 큰 실망감으로 돌아왔다. 그 이유는 미얀마 군부가 소수민족 로힝야족 반군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인종청소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2016 10 9, 로힝야족 박해 종식을 외치는 무장단체아라칸 로힝야 구원군 (ARSA)  라카인주 북부 경찰서 초소 등을 습격하여 경찰 9명을 살해하고 총기와 총탄을 훔쳤다. 미얀마 군부는 무장세력 토벌을 빌미로 로힝야족 거주지인 라카인주에서 대규모 군사작전을 감행하였고 이때 1,500여 채의 주택과 건물이 방화로 사라지고 로힝야족 3분의 1에 해당하는 75,000명이 방글라데시로 탈출하였다. 세계 최대 빈국 방글라데시에서는 난민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기에 이들은 현재 임시 난민촌에 머물고 있다. 유엔은 작전으로 1,000 이상이 사망했다고 추산한다. 피해 생존자들은 인터뷰를 통해 군부와 경찰대가 민간인을 무차별 난사하고 근거리 사격을 통해 살해했으며, 구타, 방화, 성폭행도 일어났다고 증언하였다.[1]피해자 중에는 아동과 여성도 다수 포함되어있다. 유엔은 미얀마 군부의 작전은 반군진압의 목적이 아닌 로힝야족 전체를 대상으로 한 ‘인종청소’였다고 규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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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로힝야족에 대한 차별과 박해는 민주 정부가 출범하기 오래전부터 고질적으로 있었던 문제다. 무슬림을 믿는 로힝야족은 불교 국가인 미얀마에서 종교적, 사회적, 경제적인 차별과 핍박을 받아왔다. 1982년에는 시민권마저 박탈되어 무국적자 신분으로 살아왔다. 미얀마 당국은 로힝야족 인구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까다로운 결혼 절차와 출산억제 정책을 갖고 있으며 이들은 이동할 자유도 없다. 결혼하기 위해서는 임신 테스트를 받고 두 자녀를 초과해 낳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야 하며, 당국은 예고 없이 집을 방문하여 결혼상태와 자녀 수 등을 확인한다. 또한, 로힝야족은 그 어떤 이유로도 다른 마을로 이동할 수 없으며, 이를 어길 시 징역 10년형에 처한다. 벵골만이 맞닿은 라카인 주( 지명 아라칸)에 모여 살고 있는 이들의 마을에는 전기, 상하수도시설이 들어와 있지 않고 학교와 의료시설 역시 미비하다. 취업도, 결혼도,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사람들은 브로커가 제공하는 배를 타고 말레이시아, 태국 등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도 전복 사고도 자주 일어나고 브로커 비용 지급문제로 국경을 넘는 자와 남겨진 가족들에게 수많은 인권문제가 발생하고 있다.[2]

 

         미얀마 정부는 이 작전이 2017 2 셋째 주까지 4개월간 진행되었다며 작전 시행 여부는 인정했으나, 민간인 집단공격에 대한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였다. 민주화와 인권의 상징이었던 수 치가 미얀마의 지도자가 되어 국제사회는 미얀마의 새로운 모습을 기대했다. 그러나 이러한 대규모 유혈사태가 일어난 것에 실망했으며, 이 문제를 대하는 수 치 국가자문역의 태도와 대응방식에 더 큰 실망과 분노를 하게 되었다. 수 치는 로힝야족 관련 소식에 많은 부분은 과장되어 있으며, 인종청소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언급하였고, 무장단체를 테러집단이라 규정하며 무슬림 소수민족뿐 아니라 불교 버마족들도 큰 피해를 받았다며 오히려 국제사회에 균형 있는 시각을 요구하였다. 이 발언 직후, 옥스퍼드 시는 수 치에게 수여되었던 명예 시민권을 박탈시키고 옥스퍼드 대학교에 있던 그녀의 동상이 철거되었다. 그녀가 수상한 노벨평화상 역시 취소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다.

 


4. 복합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로힝야 문제

 

현시점, 로힝야족 탄압사태에 대해서 거의 모든 화살은 미얀마의 새로운 수장인 아웅 산 수 치에게 집중되었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그만큼 그녀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그녀를 통해 미얀마가 민주화의 길을 올바로 걸어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 치는 지도자가 되기 전, 2010 11 14일 당사연설에서 용기 있는 국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달성하는 일, 물리력이 아니라 평화적인 방법으로 소수 종족 문제를 해결하고 국민 화해와 통합을 달성하는 일에 여생을 투신하고 그것이 달성되면 ‘평범한 늙은이’로 돌아갈 것이라 말한 바있다.[3] 그렇다면 수 치 자문역의 로힝야족 문제에 대해 보이는 소극적이고 무책임한 태도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사실 미얀마의 민주화 과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로힝야족 탄압사태는 ‘수 치’라는 지도자 개인을 분석해서는 이해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다. 그보다 현재 미얀마 내부 힘의 구조와 이와 얽혀있는 여러 힘의 역학관계를 통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식민지배의 잔재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미얀마 로힝야족 문제는 최근 문제가 아닌 영국 식민시기 부터 시작하는 오래된 문제라는 것이다. 1885년 미얀마를 식민지 삼은 영국은 ‘분할통치 정책(divide and rule), 피지배층의 민족 감정이나 종교, 사회, 경제적 이해관계를 이용해 내부의 갈등과 대립을 유발해 통일된 반대 세력이 나타나지 못하게 막는 정책 펼쳤다. 영국은 미얀마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불교 신자 버마인들 대신 이슬람을 믿는 소수민족 로힝야족을 중간 지배 계층으로 삼아 그들에게 미얀마인들로부터 수탈한 토지를 농사시키고 심지어 1942년에는 로힝야족을 시켜 2 5000 명의 미얀마인을 학살시켰다. 이때부터 미얀마인들은 보이는 로힝야족에 대한 뿌리 깊은 적대감을 갖게 된다. 오늘 대부분의 미얀마인은 여전히 로힝야족을 적대시하고 있으며, 특히 극우 승려들을 중심으로 로힝야족들이 출산을 많이해 미얀마를 무슬림 화 시킬 있다는 식의 이야기와 반무슬림 정서가 퍼져있다. 따라서 로힝야족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한 국민적 측은지심은 찾아보기 힘들다. 미얀마 군부가 주도하는 통합단결발전당(USDP)뿐만 아니라 아웅 산 수 치가 속해있는 당을 포함하여 29개 정당이 로힝야족에게 시민권을 주는 방안을 거부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최근 사태에 대한 아웅 산 수 치의 반응에 비난과 실망감을 표시하지만 국민은 이를 보고 더욱 수 치여사를 떠받고 있다. 미얀마 국민 90% 불교인 것을 고려할 , 아웅 산 수 치는 정치인으로서 국민 정서를 신경 쓰고 있다고 수도 있다.

 

비민주적 헌법으로 보호받는 군부의 힘

 

두 번째로, 미얀마의 보이는 실권은 아웅 산 수 치 국가자문역이 쥔듯하나 힘은 여전히 군부에 집중되어 있다. 이를 가장 극명히 보여주는 것이 미얀마의 헌법이다.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는 2008년 개정헌법은 미얀마 군부정권이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등장했으나 사실상 민주화를 위한 헌법개정이라기보다는 어떠한 변화에도 군부의 세력은 유지하겠다는 의도로 만들어졌다. 현재 헌법은 국민이 직접 뽑지도 않은 군 최고사령관이 연방의회(하원 포함), 도의회, 주의회 의원 1/4을 지명할 수 있고, 이 지명 권한에 대한 통제 수단이 없다(헌법 제74, 109). 또한 군최고사령관은 국방부, 내무부, 국경부 등의 장차관 후보자를 결정한다(232). 미얀마의  군통수권자 역시 군 최고사령관이다(20). 국가비상사태의 경우에 그는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을 모두 장약할 수 있으며(418, 419), 그 기간 어떠한 행위를 하더라도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432조 후문).[4] 이렇게 막대한 힘이 군부에 실려있고, 대부분의 정치 엘리트가 군부 출신이기 때문에 국가를 새로 디자인하기 위해 신정권은 군부와의 협력이 불가피하며, 군통수권도 없는 아웅 산 수 치 국가자문역이 군부에 도전하는 대개혁을 시도한다면 쿠데타의 위험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로힝야족 진압과 여기서 발생한 인권문제 역시 군부의 소행이기 때문에 아웅 산 수 치 국가자문역은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군부와의 조정이 필요하다. 민주화 과정에서 여러모로 군부의 눈치를 보는 수 치 정권의 소극적인 모습이 실망적이지만 힘의 이양이 완전히 옮겨지지 않은 시점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이 사태를 바라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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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 군 최고사령관과 국가자문역 아웅 산 수 치>

 


오래된 소수민족과의 내전

 

마지막으로,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족뿐만 아닌 여러 소수민족과 내전을 겪고 있다. 따라서 로힝야족 반군과의 분쟁 속에서 발생하는 인권유린과 폭력은 미얀마의 다양한 소수민족과의 갈등이라는 큰 그림에서도 바라봐야 더 정확한 이해를 할 수 있다. 미얀마에는 정부가 공식인정하고 있는 민족만 135개가 있고(버마족 68%, 샨족 9%, 카렌족 7%, 중국계 3%, 인도계 2%, 몬족 2%, 기타 5%)(그림 3 참조) 로힝야족은 비공식적 민족에 속한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얻는 조건으로 소수민족과 국가 구성을 결정짓기로 한 미얀마는 수 치의 아버지인 아웅 산 장군의 리더십 아래 소수민족의 자치를 인정하는 연방구조를 채택했고 10년 후에는 의사에 따라 연방을 탈퇴할 수 있다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로 1948년 미얀마가 독립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소수민족에게 자치를 약속한 아웅 산 장군이 1947년 독립을 코앞에 두고 암살을 당했고, 이후 자치권에 대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소수민족들은 각자의 군사조직을 결성하여 반정부 무력투쟁을 하게 된 것이다. 미얀마 정부는 이때부터 지금까지 중앙집권적 행정제도를 유지하고 소수민족들의 거주지에서 개발되는 천연자원으로부터 막대한 부를 생산하면서 이를 군부세력과 군부 출신의 기업가들이 독점해오고 있다.[5] 아웅 산 수 치는 국가자문역이 된 이후 아버지의 정신을 계승한다고 말하며 소수민족과 70여 년간 이어져 온 분쟁을 종식하고 평화를 정착하기 위해 소수민족 반군단체와 각 정당 대표, 군 관계자 등이 참석하는 평화회의를 작년과 올해 개최하였다. 하지만 발언권을 인정 못 받은 반군단체의 항의와 회의 기간 군부의 공격 등의 이중적인 모습으로 형식에 지나친 회의라는 지적을 받으며 뚜렷한 성과는 나오고 있지 않고 있다. 문제는 시민권도 없는 로힝야족은 이 자리에도 끼지 못하는 실정이며, 이미 이렇게 많은 소수민족과 골머리를 앓고있는 미얀마 정부가 식민지배 시절부터 이어진 미움과 종교적 선입견으로 국민의 반감을 사는 로힝야족에게 시민권을 부여하고 이들에게 양질의 터전을 제공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너무 낙관적인 바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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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나가며: 미얀마의 미래를 위한 국제사회의 당근과 채찍

 

         로힝야족 문제뿐 아니라 전반적인 인권문제에 있어서 아웅 산 국가자문역은 미래가 달린 변혁의 꼭짓점에서 군부와의 세력갈등을 초래하지 않으면서 미얀마를 진정한 자유와 번영으로 이끌어야 하는 막대한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거대한 과제를 떠맡기에 현재 수 치 국가자문역의 모습은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만약 신정부와 군부 간의 줄다리기 과정에서 수 치의 리더십만으로 여전히 지속되는 로힝야족 사태와 인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국제사회의 역할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물론 소수민족 문제는 주권의 문제이기에 민감한 사항이지만, 로힝야족 인종청소 문제는 소수민족의 문제이기 이전에 인권문제이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개입이 없이는 탄압받는 자들의 고통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미 국제사회는 미얀마에 행보에 우려와 함께 여러 권고를 한바 있다. 로힝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현지에서 활동해온 코피 아난 전 유엔사무총장은 일전 당국에 로힝야족에게 시민권을 부여하고, 경제·사회적 혁신 조치를 통해 이들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라고 권고했다. 또한 최근 사태에 관하여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미얀마 정부를 상대로 북부 라카인주에서 즉각 군사행동을 중단하라고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하지만 미얀마의 현 사태를 도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국제사회의 노력은 미얀마의 민주화를 도출해낸 경제적 당근과 채찍일 것이다. 미국은 이미 미얀마군 수뇌부에 대한 표적 제재 등을 검토하고 있다. 경제제재라는 채찍과 인권신장 등의 노력의 대가로 자원을 당근 삼는다면 군부의 행동 변화를 유도하며 로힝야족 인종청소와 같은 비인륜적 사태 해결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제사회는 오랜시간 군부정권에 시달렸던 미얀마가 단숨에 인권과 번영의 나라로 변화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제도적인 변화와 더불어 국민의 의식변화를 위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또한 군부의 힘이 여전히 보장되고 있는 비민주적 헌법 아래 아웅 산 수 치 국가자문역의 의지대로 운영되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것 역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 그녀가 사건들을 부정하는 모습과 유엔의 진상조사단 파견을 거부한 것에는 분명한 문제가 있다. 미얀마를 진정 유지 가능한 자유와 번영의 미래로 이끌기 위해서 수 치여사는 국민의 마음을 사기 위해 진실과 정의를 배반하기보다는 국민을 설득하는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다행히 아웅 산 수 치는 국민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있으며, 국제사회 역시 미얀마를 도울 의지가 있다. 수 치 여사를 향한 기대가 완전히 꺾이기 전에 더 책임 있고 정의롭고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기 원한다.

 

         로힝야족 문제는 굉장히 여러 사안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이다. 인권문제이면서 소수민족 문제이고, 군부와 반군 간에 일어나는 군사적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식민지 시기부터 이어져 오는 미움과 갈등의 문제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얽혀있는 것이 미얀마의 민주화 과정 속 힘의 이양 과정 안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난제일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로힝야족 문제는 미얀마에 인권과 평화, 정의가 바로 서는 성숙한 ‘민주주의’가 정착했는지를 평가해줄 수 있는 잣대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과거의 아픔을 해결하고 인권의 신장과 화해를 이루는 과도기정의적 목표를 이룬다면 미얀마의 소수민족들과의 갈등과 번진 70여 년의 세월을 청산하고 진정한 변화를 이룰 것이라고 본다.

 

 

참고문헌

 

아디인권실태보고서 2017 4

2008 미얀마 헌법에 대한 대한변협 의견서(대한변호사협회, 2014.4.)

미얀마의 로힝야족 탄압… 식민 지배가 낳은 비극 (조선멤버스, 2017.09.14)

미얀마 소수민족 로힝야 인권침해 실태와 대응 (시민사회 집담회 자료집 2017.4.28)

다큐멘터리Outcast: Adrift with Burma's Rohingya (Aljazeera, 2016)

 빛 두 줄기 비춰도 미얀마의 봄 멀다(장준영, 동남아연구소, 2010.12.03)

미얀마의 개발 과제와 한‧미얀마 개발협력방향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13)



[1]아디인권실태보고서 2017 4

[2] 다큐멘터리Outcast: Adrift with Burma's Rohingya (Aljazeera, 2016)

[3]빛 두 줄기비춰도 미얀마의 봄멀다(장준영, 동남아연구소, 2010.12.03)

[4] 2008 미얀마 헌법에 대한 대한변협 의견서(대한변호사협회, 2014.4.)

[5] 미얀마의 개발 과제와 한미얀마 개발협력방향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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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정의로운 용서? 사면에 관하여 mj 2017.07.24 49
152 [논문요약] 국제범죄자에 대한 국가사면에 관한 국제법의 입장과 전망 (김형구) mj 2017.06.26 54
151 4월의 관성: 민주적 성숙을 위한 지침서 mastad 2017.05.07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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