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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과학기술 정책 현주소 - 황우석 박사의 망령

 

최근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의 실질적인 사령탑격인 과학혁신 본부장으로 순천대 박기영 교수가 임명되었다. 인사 발표가 나자마자 한국과학계의 많은 학자들의 반발과 동시에 십년도 지난 황우석 박사의 망령이 다시 살아나 인터넷상에서 뜨겁게 달구고 있다. 미디어에서는 황우석 박사의 사태를 명망있는 한 과학자의 거짓과 그에 따른 추락으로 다루고 있지만, 이 사건의 한국 과학 정책의 현주소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중요한 사건이기도 하다.


현재의 논란을 다루기 전에, 먼저 황우석 박사의 사태에 대해 잠깐 요약해 보기로 하자. 황우석 박사는 전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이자 체세포나 줄기 세포를 이용한 동물복제 전문가이다. 1999 2, 국내 최초로 체세포 복제 소 영롱이를 탄생시킨 이후 연구를 발전시켜 2004년 사이언스를 통해 문신용 교수팀과 함께 세계 최초로 사람 난자를 이용해 체세포를 복제하고 이로부터 배아 줄기세포를 만드는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그 이후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승승장구하였고, 2005년 드디어 황우석 박사를 중심으로 줄기 세포 연구를 위한 국제 컨소시엄이 만들어 지며, 참여정부의 전복적인 지지를 받아 줄기세포 국내 연구를 공식적으로 승인을 받게 된다. 그러나, 2005 6PD 수첩 게시판에 황우석 교수팀이 체세포 배아 줄기세포를 하나도 만들지 못했다는 제보가 올라오면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조사 위원회가 꾸려져 조사가 시작되고, 양측 간의 끊임없는 공방이 가운데, 황우석 박사의 지시로 김선종 연구원이 조작한 것으로 결론이 나면서, 연구윤리 문제와 함께 연구비 횡령문제까지 드러나 결국은 황우석박사팀이 해체 되면서 모든 프로젝트들이 중단되고, 황우석 박사는 2009년에 징역 2, 집행유예 3년을 받으면서 사건은 마무리 된다. 그럼, 박기영 교수와 황우석 박사는 과연 어떠한 관계인가? 당시 박기영 교수는 참여 정부의  과학기술보좌관으로 노무현 대통령과 황우석박사 사이에 중요한 연결 고리가 되었으며, 황박사의 후원자로서 중요한 과학 기술정책들을 설계했다. 그리하여, 황우석박사 사건이 발생하자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현재 과학계를 뜨겁게 달구는 논란의 핵심은 한국 과학정책 역사에 한획(?)을 그은 인물이 다시 비슷한 자리로 돌아 오게 된 것이다.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과학기술계에 살짝 발만 담그고 있는 한 사람으로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여러가지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자꾸만, 정부가 정부 주도의 성과 위주 과학 정책들을 진행하고자 하는데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시작된 선택과 집중을 통한 성과 위주의 정책들은 대한민국에 빠른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그 부작용 또한 매우 크다. 조급증, 과도한 통제, 강박증과 쏠림 현상들은 대표적인 한국병이 되었다. 물론 경제 정책에 있어서 선택과 집중은 빠른 성장에 밑거름이 된다. 그러나, 튼튼한 기초를 만들지 않은 채, 높은 건물만 짓는다면 어느 층 이상 도달하면 결국 건물이 무너지듯 과학 정책에 있어서도 선진국에서 이미 보여주듯이 반세기를 넘게 다져야만하는 기초과학 생태계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생태계는 결코 정부 주도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이루어져도 안된다. 그 중요한 예로 미국의 맨하턴 계획과 오펜하이머의 재판이다. 오펜하이머는 원자 폭탄의 아버지로 2차 세계대전에서 맨하턴 계획을 주도하여 원자폭탄을 개발하였으며, 그로 인해 많은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실제 일본에 떨어진 원자 폭탄의 위력을 보고 그는 충격을 받아 반핵의 입장을 표명하며, 미국의 모든 핵개발 계획을 통제하고자 한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그의 태도에 불만을 갖고, 그와 반대입장에 선 수소폭탄의 아버지인 텔러를 내세워 청문회를 통해 오펜하이머를 매장시키게 된다. 그 후 텔러는 오펜하이머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지만, 미국 과학계에서 텔러는 왕따가 되고, 두 사람 모두 뛰어난 물리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이후에 아무 업적도 남기지 못하게 된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정부주도의 과학 정책이 얼마나 비극적인 결과를 생산하게 되는가에 대한 중요한 교훈이다.


황우석 박사 사태 또한 이 사건과 비슷한 형태를 가지며, 황우석 박사 본인 뿐만 아니라 정부, 언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욕망들이 얽혀서 만든 공동 작품이다. 만약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황우석 박사에게 덜 집중 되었더라면, 혹은 미디어에서 그를 덜 띠웠더라면, 정부가 실적에 덜 욕심을 내었더라면, 지금 그 결과는 달라졌으리라 생각된다. 물론 문재인 정부는 4차 혁명이라는 큰 흐름 안에서 무언가를 국민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의욕이 조급증이나 강박을 통해 이루어진다면 그 결과는 과거의 망령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현재 중국의 기술 발전이 선택과 집중이 아닌 과학자와 기술자들의 정당한 대우와 자율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중요한 시금석으로 삼아 모든 과학정책들을 결정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을 실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