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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 

콘도르 작전


하태현 기자 (2005.11.01) 


70년대에는 세계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주의 진영의 대립구도가 팽배했다. 이념 갈등이 극에 달했던 그 시절, 지구 반대편의 남미에서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갈등이 한창이었다. 영국, 스페인 등 유럽의 오랜 식민지 경험이 있었던 칠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브라질 등의 남미의 국가들은 독립 후 자연스레 자본주의 노선을 택했다. 2차 세계대전과 대공황 이후에는 세계 경제 시장의 변화와 함께 남미에서 미국의 입김이 커졌다. 게다가 미국 또 다른 쿠바* 탄생을 막기 위해 '진보를 위한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남미를 원조하고 동시에 감시했다. 70년대의 남미에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쿠데타와 내란이 끊이질 않았다. 이는 곧 군사 정권에 의한 독재 통치로 변했다. 대외적으로는 자유주의 국가였지만, 사실 상 박정희, 전두환 등의 군인에 의한 군사독재정권이었던 우리나라의 7.80년대처럼 말이다. 마찬가지로 남미의 군사정권은 자신들을 반대하는 좌익 세력을 가차 없이 탄압했다.

좌익 세력 잡는 콘도르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은 인접국으로 망명한 좌익 세력의 체포와 심문을 위해 브라질, 볼리비아, 칠레, 파라와이, 우르과이 군사정권과 함께비밀 공조체제를 만들었다. 이 것이 바로 '콘도르 작전' 또는 '콘도르 계획'이다. 콘도르는 죽은 이의 영혼을 하늘로 올려 보낸다는 전설을 가진 남미를 상징하는 새이다. 73년 칠레 군사 쿠데타 이후 남미 지역을 중심으로 자행된 '마르크스주의 테러리스트들을 뿌리 뽑기 위한 암살, 납치공작'을 가리키는 암호로도 사용되었다.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의 비델라*는 칠레의 피노체트, 파라과이의 스트로스네르, 볼리비아의 우고 반세르, 브라질의 피게이레두 군사정권과 더불어 각국 정보기관들과 강력한 네트워크를 구성했다. '콘도르 작전'의 목적은 표면적으로는 반공과 좌익진압, 즉 공산주의 세력의 저지였다. 그러나 실은 각국 반체제 인사들과 그 지지자들을 무자비하게 납치, 고문, 살해하는 탄압도구로 이용됐다. 콘도르 작전으로 좌익 세력은 물론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반체제 인사들도 남미 어느 곳에도 발붙일 수 없었다. 

콘도르의 중심 DINA

콘도르작전을 주도한 핵심기관은 칠레의 비밀 경찰격인 국가정보회의(DINA)다. DINA는 93년 9월 피노체트가 칠레에서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뒤, 단 2개월 만에 만들어졌다. 이 조직은 오직 피노체트의 지시만 따랐으며 '좌익공산세력 박멸'이라는 목표 아래 좌익 세력에 대한 무자비한 숙청작업을 주도했다. DINA는 가끔 지나친 독점적 권력의 행사로 군부와도 적잖은 마찰을 빚었다. 피노체트의 전임자였던 카를로스 프레츠 장군과 그의 부인, 기독민주당 등 야당인사들의 납치와 암살 등도 모두 DINA의 소행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재 미 FBI 파견요원이었던 로버트 슈헤르가 처음 본부에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칠레는 콘도르 작전의 중심'이었고 테러리스트와 그 배후세력을 뿌리 뽑기 위한 '특별팀'에 칠레가 각종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다. 이 작전의 희생자는 수 만 명에 이른다. 칠레 피노체트가 1990년까지 집권하는 동안 인권 유린 사건으로 죽거나 실종한 사람이 3천 197명에 이른다.

“추악한(dirty) 전쟁, 추악한 모습으로 끝낼 수 없다"

현재 남미에서는 콘도르 계획에 대한 책임 추궁은 물론 군사정권에 대한 과거 청산 운동이 한창이다. 피노체트 전 칠레 대통령과 아르헨티나 전 대통령 비델라 등 콘도르 계획의 대표적인 배후 세력에 대한 법정 판결에 전 세계가 집중하고 있다.

칠레는 2005년 9월 피노체트 전 대통령의 반체제 인사 납치, 살해 사건 배후 조종 혐의와 관련해 그가 전직 대통령으로서 누렸던 '면책특권'을 박탈했다. 따라서 피노체트가 법정에서 재판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또한 칠레정권은 군정기간 자행된 대규모 인권 유린 사태에 대해 사과성명을 냈다. 아르헨티나의 비델라 전 대통령도 72명의 외국인을 강제 실종시킨 혐의로 2001년 기소되었다.

추악한 전쟁을 추악하게 끝내지 않기 위해 남미 국가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외국인이 아닌 자국민에 의해 자행되었던 남미의 군사정권, 그 아래 '콘도르 계획'이 있었다.

* 쿠바 : 제 3세계 내셔널리즘에 입각한 변혁의 기운에 고무된 1959년 쿠바혁명은 초기에는 민족주의 성격을 띠고 시작하였으나 61년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 혁명으로 이념 노선을 변경, 현재까지 사회주의 국가로 남아있다.

* 비델라 : 아르헨티나 정치가. 1976년 3월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 이사벨 페론을 축출하고, 군사평의회의 추대로 대통령에 취임하여 1981년까지 재직하였다.

출처: [역사퍼즐] 70년대 남미를 흔들었던 콘도르(Condor) 계획,, 하태현 기자, 스토리오브서울, 2005.11.01-



2. [과도기정의] 
6만명 살해한 ‘콘도르 작전’…30여년 만의 ‘너무 늦은’ 단죄

원문보기: [경향신문]


*콘도르작전: 1975년 칠레 피노체트 정권을 중심으로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등 남미 6개국 군사정권이 좌파 세력을 탄압하려고 공조한 작전이다. 1976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정부는 자국민들을 상대로 고문과 학살을 한 일명 ‘더러운 전쟁’을 벌이면서 타국 정보기관과 협조해 해외로 망명한 반체제 인사도 끈질기게 추적해 제거했다.  


1970~1980년대 ‘콘도르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반정부 인사들을 탄압하고 고문·살해를 자행한 군부독재자와 수하들이 30여년 만에 법의 심판을 받았다. 그러나 역사의 단죄는 늦었고, 주범은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아르헨티나 연방법원은 27일(현지시간) 콘도르 작전의 책임을 물어 레이날도 비그노네 전 대통령(88)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우루과이 육군 대령 마누엘 코르데로 피아센티니 등 전직 장교 14명에게도 콘도르 작전에 개입한 혐의로 각각 징역 8~25년을 선고했다. 1982년부터 1983년까지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의 마지막 대통령을 지낸 비그노네는 이미 재임 당시 저지른 고문·살해 혐의로 2010년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콘도르 작전의 책임이 밝혀진 것은 처음이다. 

이날 재판에는 콘도르 작전의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도 참석했다. 칠레에서 온 로라 엘게타의 오빠 루이스는 1976년 콘도르 작전 때문에 아르헨티나에서 실종됐다. 엘게타는 AP통신에 “이 작전은 내 삶과 가족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며 “처음으로 법원이 이 사악한 작전에 유죄를 인정했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 작전은 명목상으로는 ‘좌익 게릴라 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학생, 수녀, 언론인 등 조금이라도 반정부 성향을 보인 시민들을 불법적으로 납치해 고문을 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인근에만 학교, 체육관 등을 개조해 만든 ‘비밀수용소’가 수십개에 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약 6만명이 살해당했고 3만명이 실종됐다. 투옥된 사람은 40만명에 이르렀다. 군사정권은 감옥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엄마에게서 빼앗아 군인, 기업가 등 친정부 성향 가정에 입양시켰다. 이 ‘잃어버린 아이들’이 자라나 부모를 찾게 되면서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1983년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콘도르 작전의 실체는 묻혀 있다가, 1992년 파라과이의 한 경찰서에서 당시 문서가 공개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1999년 미국 빌 클린턴 행정부가 중앙정보국(CIA) 기밀문서를 공개하면서 CIA가 콘도르 작전에 깊숙이 개입한 사실이 알려졌다. 1970년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남미 극우파 군사정권들의 배후에 CIA가 있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콘도르 작전의 이론을 제공하고 후원했으며, CIA는 남미 정보기관 요원들을 훈련시키고 재정과 물자를 지원했다. 군부정권 때 제정된 사면법 때문에 콘도르 작전에 대한 기소는 이뤄지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5년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대통령이 사면법을 폐지했고 2013년 재판이 시작됐다. 피해자 106명의 증언이 법정에 제출됐다. 비그노네와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전 대통령 등 18명이 기소됐다. 2010년 이미 종신형을 선고받았던 비델라는 재판을 받던 중 2013년 5월 사망했다. 



남미 인권유린 ‘콘도르 작전’ 40년만에 단죄


등록 :2016-05-29 20:01


  • 아르헨, 비뇨네 전 대통령 등 관련자들에 징역 8~25년형
  • 1970~80년대 칠레 등 6개국 반공 명분 군·경 테러조직 가동 반대세력 납치·살해 등 극렬 탄압
  • 미 CIA 등 통해 묵인·지원 의혹

아르헨티나 법원이 남미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국제적 추적·납치·살해 범죄인 ‘콘도르 작전’에 대해 역사적 첫 단죄를 했다.

아르헨티나 연방법원은 27일 레이날도 비뇨네(88) 전 대통령에게 콘도르 작전에 대한 책임을 물어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적용 혐의는 불법단체 결성, 납치, 직권남용 등이며 법원은 그가 반체제 인사 100명 이상의 실종 사건에 관여했다고 판결했다. 

1982~83년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의 마지막 대통령인 비뇨네는 이미 군부독재 정권 시절(1976~83년) 각종 인권침해 범죄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이번 판결은 1970~80년대 남미의 친미 독재정권들이 공조해 벌인 콘도르 작전에 대한 40여년 만의 첫 단죄다.

 ‘콘도르 작전’이란 1975년 칠레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아르헨티나, 브라질, 볼리비아, 파라과이, 우루과이 등 다른 남미 독재정권들을 엮어 만든 일종의 ‘국제협력 군경 테러조직’으로,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이 무너진 1983년까지 계속됐다. 피노체트는 ‘콘도르 작전’의 명분을 좌파 게릴라 근절을 위한 ‘반공’으로 내걸었지만, 실제론 자신들의 철권통치에 반대하는 반체제 인사들 또는 민간인인 그 가족들을 감금하고 처형하는 데 이용했다. 각국 군사정권은 상대방 국가에서 활동하거나 숨어 있는 자국의 반체제 인사들의 체포를 부탁하거나, 상대방 반체제 인사들을 넘겨주는 데 콘도르 조직망을 이용했다. 베네수엘라가 주도해 만든 남미 위성방송 <텔레수르>는 콘도르 작전과 관련해 아르헨티나에서만 3만명이 실종됐다고 추정한다.


아르헨티나 연방법원은 이날 비뇨네 전 대통령뿐 아니라 콘도르 작전에 관여한 다른 군 출신 인사들에 대해서도 징역 8년에서 25년까지 선고했다. 유죄선고를 받은 이들 가운데는 우루과이의 마누엘 코르데로 피아센티니 전 대령도 포함돼 있다. 그는 남미 각국에서 납치돼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끌려온 반체제 인사들을 고문한 혐의로 25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아르헨티나의 시인 후안 헬만의 며느리를 우루과이로 납치한 사건에 관여한 혐의도 받았다. 헬만의 며느리는 임신한 상태에서 납치돼 우루과이에서 출산한 뒤 살해당했고, 손녀딸은 강제입양됐다.


콘도르 작전은 1992년 파라과이의 한 판사가 찾아낸 정치범 관련 자료를 통해 세상에 드러났다. 이후 관련 조사가 1990년대 아르헨티나에서 대대적으로 시작됐다.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이 만들어놓은 사면법에 따라 조사가 벽에 부닥쳤지만, 아르헨티나 대법원이 2005년 사면법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려 이번에 단죄가 이뤄지게 됐다.


또 1998년 비밀해제된 미 연방수사국(FBI) 문서들을 보면, 미국은 이 콘도르 작전에 대해 중앙정보국(CIA) 등을 통해 배후에서 후원했고, 최소한 이를 묵인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당시 콘도르 작전에 대해 아르헨티나 장관들과 연락을 주고받았고, 국무부가 콘도르 작전에 대해 남미 각국에 경고를 보내려던 계획을 중간에 가로막았다는 의혹도 받고 있으나, 키신저 장관은 이를 부인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출처: 한겨례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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