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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적 속물즉자적 속물

 

저자는 지난 1980년대 진정성 시대의 선봉장이었던 386세대가 낳은 한 세계적 감독이 만든 영화를 통해 현대 한국 사회의 풍경을 읊기 시작한다.

(386세대는 19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에 다니며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세대를 일컫는다. 1990년대 최신형 컴퓨터였던 386컴퓨터에서 혁신과 첨단의 이미지와 당시 30대이던 세대적 특성을 뽑아 만든 말이다. 30여년이 지난 2016년인 현재 이들은 50대로 현대 한국 사회의 핵심 주도층이다. 근래엔 연령을 나타내는 첫 번째 숫자를 빼고 ‘86세대로 부르기도 한다.)

2002년 개봉한 영화 <생활의 발견>에는 우리가 인간은 못 돼도 괴물은 되지 말자.”는 자조 섞였지만 분명 어떠한 장엄한 결의를 드러내는 대사가 나온다.

이는 80년대 이후를 살아가는 ‘386세대가 자신들의 청춘이 끝나고 도래한 새로운 시대 속에서 공통으로 체험하는 어떤 세계감정을 예리하게 건드리고 있(52)’는 것으로 대표된 말이다.

역사이후 하이퍼 일상보전하는 개인들의 삶을 살며, ‘역사가 빠져나간 진공의 공간에서 욕망하고, 모색하고, 방황하고, 흩어지는 개인들이 과거 역사 속에서 인간으로 살았던 시절을 희미하게 기억하기에 발화 가능한 최대치의 언사를 집약적으로 보여준 것으로 저자는 평가한다.

한때 자신들 역시 역사와 대면했던 인간이었지만, 이제 다시는 그러한 인간이 될 수 없으며, 좀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다시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지 않다는 사실을 다소 우울하게 냉소하고 있는 것(52)”으로 김홍중 교수는 설명한다.

 

이 감독은 자만심과 허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작가와 예술가들, 세속적이고 편협한 대학교수들, 순수한 척하지만 사실은 타락한 영혼을 소유하고 있는 청년들, 나르시시즘과 허영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여성들, 사랑과 학대 그리고 애정과 집착을 구분하지 못하는 연인들(53)”을 계속해서 그렸다.

악인이 아닌 범인이지만 섬뜩한 사악함의 예각을 가진 이들의 모습은 이제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지극히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저자는 모두가 속물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이제 두 부류의 인간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본다.

1) 하나는 본인이 속물이라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아무런 문제의식도 수치심도 없는 즉자적 속물이다.

진정성의 에토스가 기능하기 위해서 전제되어야 했던 성찰성, 내면성, 주체성이 해체된 결과, ‘즉자적 속물삶의 피상성과 천박성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몰염치는 단순한 뻔뻔함이 아니라 신념에 충만한 당당함이며 과시적인 파렴치(66)”한 특성을 보인다.

저자는 이를 니체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언급한 최후의 인간과 등치시키며 혜안적 구절을 소개한다.

슬픈 일이다! 머지않아 사람이 더 이상 별을 탄생시킬 수 없게 될 때가 올 것이니. 슬픈일이다! 머지않아 자기 자신을 더 이상 경멸할 줄 모르는, 그리하여 경멸스럽기 짝이 없는 자의 시대가 올 것이니... (중략) ‘우리는 행복을 찾아냈다.’ 최후의 인간은 이렇게 말하고는 눈을 깜박인다(68).”

2) 다른 하나는 ‘2000년대적인 감각의 피하에 아직도 진정성의 윤리를 은닉하고 있는 퇴화한 꼬리뼈와 같은 흔적기관인 내면을 가졌기에 속물인 자신과 타인들을 냉소와 멸시를 담아 바라보면서 우리가, 인간은 못 돼도 괴물은 되지 말자라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언표를 주고받는 대자적 속물이다.

모두 다 속물인 오늘날의 세상에서도 성찰적 내면과 수치심을 보유한 대자적 속물은 동물과 속물이 수치를 모르듯이,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기에 역사철학적 의미에서 말하자면 최초의 비인간에 다름 아닌 이 최후의 인간즉자적 속물과 비교하면 눈이 부실 정도다.

저자도 두 속물 사이에 분명히 선을 긋고 대자적 속물을 상대적으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대자적 속물즉자적 속물사이의 거리

 

하나의 흥미로운 사실은 세계적인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이 386세대 출신 감독이 바로 최근 딸뻘의 여배우 김민희와의 불륜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홍상수 감독이라는 사실이다.

(김민희를 십대 시절 스타덤에 오르게 만든 것이 새로운 밀레니엄인 2000년에 사랑은 움직이는거야라는 시대적 프레이즈를 남긴 CF라는 사실은 뭔가 운명적인 느낌까지 준다.)

대학생 딸과 아직도 평생 남편을 기다리겠다며 눈물 흘리는 아내를 버리고 본인의 욕망과 바람에 충실하기로 결정한 당사자가 20여 년 전인 2000년대 초 우리가 인간은 못 되어도 괴물은 되지 말자, 비록 이상적이진 않지만 그래서 더 처절한 '진정성authenticity'으로 가슴을 울릴 수 있던 바로 그 감독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20대 청춘 시절을 가득 채웠던 진정성의 윤리가 강산도 변한다는 10여년 후 퇴화한 꼬리뼈같은 흔적기관으로 수축해버려 진정한 인간이라는 이상은 포기했어도 괴물로 떨어지진 않기 위해 자신과의 사투를 벌이며, 괴물로 변해버린 즉자적 속물을 멸시하던 존재가 대자적 속물이었다.

하지만 다시 10여년의 세월의 흐름 속에서 결국 자신을 다 던져 괴물로 추락해 버린 것은 우리에게 중대한 시사점을 준다.

 

얼마 전 프랑스 마르세유의 공식석상에 여유있게 등장한 홍상수 감독은 불륜설에 대한 질문에 옅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수치를 생산하는 기관인 내면을 보유하여 본인이 속물임을 인정하고 자폭할 줄 알되 괴물이 되는 것만은 강하게 거부하고 경계하던 대자적 속물이 수치심과 성찰적 내면을 소멸한 채 뻔뻔함과 당당함으로 무장한 즉자적 속물로 다시 태어났음을 공표한 것이다.

동물적 본성에 완전히 순응하는 삶을 무개념무치로 당당하게 과시함으로써 지켜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아연실색하게 만드는 인간성을 상실한 즉자적 속물, 내면에서 용솟음치는 괴물적 본성과 그에 무릎 꿇고 싶어하는 나약한 자신의 모습을 목도하면서도 아직 인간성의 끄트머리를 굳게 부여잡고 있는 대자적 속물과 같은 선상의 비교조차 불가한 현격한 차이를 가진다.

하지만 대자적 속물즉자적 속물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가까울 수 있다.

자신이 속물이라는 사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줄 알며, 인간은 될 수 없더라도 최소한 괴물은 되지 말자는 다짐을 최대의 언사로 추구하던 대자적 속물이 거센 속물화의 시대적 조류 안에 던져질 때 즉자적 속물로 변태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수 있음을 홍상수 감독은 자신의 삶으로써 보여준다.

 

우리 시대의 어느 누가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결국 나의 마음은 우리의 마음이 아니던가.

우리는 교사, 공무원, 명망높은 사회지도층은 물론 심지어 부모까지 우리 사회를 지켜주고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주길 기대하고, 과거에는 실제로 그러한 기능을 담당했던 이들이 괴물로 변해버린 다채로운 뉴스를 매일 접하는 일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 인간은 못 되어도 괴물은 되지 말자라는 1990년대 우리의 마음의 대표적 언사가 1980년대 우리 함께 진정한 인간이 되자를 뒤이어 생겨난 것이라면, 2016년 오늘날 우리의 마음이 흘러가고 있는 방향은 인간이 되려는 것은 위선일 뿐 모두가 괴물인 세상에서 나 하나 더 괴물이 된들 어떠한가, 아니 괴물이 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정도가 아닐까.

집단적 도덕 개념의 약화 속에서 집합적 양심의 무게 역시 가벼워지고 있는 내적인 거대한 지각변동이 오늘날 각종 사회병리 현상들로 분출되고 있다.

자신의 욕망과 안위를 위해 타인을 해하고 기만하고 희생시키는 일들은 갈수록 빈번해지고, 가해자들은 놀라우리만치 부끄러움이 없이 당당하며 죄의식 또한 희박하다.

우리 사회의 거대한 조류가 이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을 때 그 안에 한 마리 작은 물고기와 같은 개인이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일은 갈수록 어렵고 희귀해지고 있으며, 조류의 흐름에 자신을 내맡겨 흘러가고 있는 다른 물고기 떼에 섞여 함께 흘러가기는 훨씬 자연스럽고 쉽기에 더욱 보편적이 된다.

 

 

이러한 현실 하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시대적 조류가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라 포스트모던화가 만개하고 있는 전 지구적인 현상이라 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더욱 없어 보인다.

한때 진정한 삶을 향해, 정의와 평화와 사랑이 다스리는 유토피아를 추구하며 거세게 흐르던 물결은 인류가 쾌락과 성공에 눈먼 질주를 경주해온 수십 년의 시간 속에서 아주 서서히 거의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점차 약해지다 멈추었고, 역류하기 시작했다.

이제 돈과 힘이 곧 정의고, 항시적 불안과 공포가 각종 정신 질환들의 폭발적 증가로 표면화되며, 고립과 증오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발아하는 디스토피아적 현상들이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

거세게 역류하고 있는 시대적 조류의 흐름을 저지하고 다시금 방향을 전환시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나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을 진정한것으로 바꾸는 일을 나와 네가 과연 할 수 있는가.

 

답은 아마 신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진정한 인간되는 일이 설령 불가능할지라도 진정한 삶'을 계속 추구하며 나아갈 때만이 우리는 괴물로 떨어지는 급류에 떠내려가 버리지 않을 수 있음을.


진정한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일지라도 나는 계속해서 달음질하며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나아갈 것이다.

진정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이룰 수 없는 일일지라도 나는 이 땅에서 내게 주어진 시간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노력들을 다 해보기를 원한다.

그런 나의 마음과 너의 마음이 만날 때, 우리가 함께 우리의 마음을 소중히 키워갈 때 언젠가 사회 전체의 마음이 흐르는 방향도 다시금 바뀌는 기적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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