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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기정의 포스팅
2016.07.04 10:01

주 9: 사례5. 남아프리카공화국: 진실화해위원회

m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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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공화국: 진실화해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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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경

과도기 정의를 실현하는 대표적인 기제 중 하나로 활용되는 것이 바로 진실화해위원회이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대량 인권침해사태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권한을 위임받아 임시적으로 설립된 비사법적 기구인데 개인 및 관련 기관의 책임 및 당해 침해사태의 근본 원인에 대한 조사를 통해 사회 구성원의 치유 및 화해를 도모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의 진실화해위원회는 약 50여 년간 남아공에서 시행된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정책으로 분열된 사회를 재통합하고 국가를 재건하기 위한 목적에서 1995년 설립되었다. 아파르트헤이트정책은 유색인종들이 백인과 동등한 정치적 및 경제적 권리를 향유할 수 없고, 백인과 분리된 지역에서 거주하도록 하는 등 사회, 경제, 교육, 문화적으로 남아공에 거주하는 유색인종을 백인과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을 의미한다.


(가) 영국 및 네덜란드에 의한 남아프리카 지배

네덜란드 사람들은 17세기 중반 무렵부터 남아공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대부분 농업에 주력하였다. 이들을 보어(Boer)인이라 한다. 
한편, 영국 사람들은 유럽에서 나폴레옹 전쟁의 결과로 19세기 초순경부터 남아프리카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네덜란드와 영국 이주민들 간의 갈등으로 인해 결국 보어인들은 내륙 지방으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보어인들은 내륙 지방에 오렌지 자유주(Orange Free State) 및 트란스발 공화국(Transvaal Republic) 지역을 설립하였다. 그런데 1867년 오렌지 자유주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견되었고, 1885년에는 트란스발 공화국 지역에서 금이 발견되었다. 보어인들이 통치하는 지역에서 다이아몬드와 금이 발견되자 이에 욕심을 가진 영국인들은 결국 보어인들과 전쟁을 하게 되어 1899년부터 1902년까지 보어 전쟁이 계속 되었다. 
전쟁을 통해 패권을 쥐게 된 영국인들은 1910년 보어인들에게 아프리카 토착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통치권을 넘겨주었다. 그런데 보어인들은 아프리카 토착민들을 매우 인종차별적인 자세로 대했다.


(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의 시행: 1948~1993

1910년 남아프리카 연합(South Africa Union)은 대영제국에 공식적으로 소속되었다. 루이스 보타(Louis Botha) 및 얀 스무츠(Jan Smuts) 수상들은 인종차별 정책에 반대하는 저항을 억누르고자 하는 목적에서 영국인과 보어인의 연합을 주장하였다. 1912년 남아프리카 흑인들의 정치적 견해를 대변하는 아프리카민족회의(African National Congress: ANC) 정당이 창립되었다. 1948년에는 보어인들의 정치적 열망을 대변하는 국민당(National Party)이 집권하기에 이르렀다. 1960년 백인들은 국민투표를 통해 남아프리카를 ‘공화국’으로 만들기로 결정하였고, 1961년 남아프리카는 영연방으로부터 탈퇴하였다. 1948년부터 1993년까지 집권한 국민당은 남아프리카 특유의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시행하였다. 백인우월주의에 근거한 인종차별은 남아프리카에 백인들이 최초로 정착하기 시작한 1652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보어인들은 영국인들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토착민인 아프리카인에 대해 인종차별적인 태도를 계속 보여 왔는데, 이는 1948년 보어인들이 지지하는 국민당이 집권하면서부터 국가의 공식적인 정책의 형태로 존재하게 되었다.

국민당은 집권 이후 그 지지층의 지지를 더욱 굳건히 하기 위해 인종차별적인 입법을 진행하였다. 국민당은 지난 정책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정책을 도입하는데 이를 통해 아프리카인들의 기본적인 정치적 권리를 박탈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인종차별적인 정책을 시행하였다. 국민당은 ‘분리 발전(separate development)’이라는 사상 하에 백인들과 유색인들을 분리하여 교육하였고, 백인들이 거주하는 지역과 유색인들이 거주하는 공간을 분리하였으며, 유색인들이 백인거주지역 내 토지를 소유할 수 없도록 제한하였다. 즉, 반투 홈랜드(Bantu Homeland) 정책으로 대표되는 인종격리정책에 의한 인종별 분리의 발전을 추진하는 한편, 다인종 사회적 현장 속에서 반투 정청법(政廳法, 1951)·유권자분리대표법(1956) 등에 의하여 유색 인종의 참정권을 부정하고, 산업조정법(1956)·패스포드법(1952)·원주민법 수정법(1952)·이인종 혼인금지법(1949)·집단지역법(1950) 등에 의하여 경제적·사회적으로 백인의 특권 유지·강화를 기도한 것이다.


(다) 1994년 정권 교체 및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의 폐기

그런데 1950년대 초순경부터 아파르트헤이트정책에 대한 반발의 새싹이 돋기 시작했다. 1955년에 만들어진 자유 헌장(the Freedom Charter)은 ‘인종차별적이지 않은 민주적인 정부’를 요구했다. 추후, 이 헌장은 아프리카 민족회의(ANC)당의 이념적인 초석이 되었다. 1962년, 아프리카 민족회의(ANC)당의 당수인 만델라(Nelson Mandela)가 체포되었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동시에 아파르트헤이트정책을 비난하는 목소리는 커져만 갔고 이는 총성 없는 전쟁과 같았다. 또한 국민당의 지지자들조차 아파르트헤이트정책이 실패라는 점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개혁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가자 1989년 새로 대통령으로 취임한 클러크(Frederik W. de Klerk)는 그 다음 해 만델라를 감옥에서 풀어주었다. 1994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모든 시민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첫 번째 선거가 시행되었다. 본 선거에서 아프리카 민족회의(ANC)당은 의회 다수당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만델라는 남아프리카를 아파르트헤이트정책으로부터 해방시켜줄 새로운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2) 과도기 정의 주요 기제와 이행 평가

1994년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이러한 과거 인권침해행위 등을 해결하기 위한 진실화해위원회의 설립이 본격화되었다. 사면권, 압수수색권, 증인소환권 등 광범위한 권한을 갖고 모범적이라는 평가를 일반적으로 받는 남아공의 진실화해위원회는 자신의 임무와 관련하여 ‘장래의 인권침해가 재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한 동기와 환경뿐만 아니라 과거의 사건에 관한 진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음을 확인하고 있는데, 이는 과거의 인권침해 사실을 확인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장래의 인권침해행위가 재발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한 것으로 보인다.

  • 남아공의 진실화해위원회(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 TRC)는 남아공에서 행해진 아파르트헤이트정책으로 인한 피해 회복을 위해 설립되었다. 본 위원회는 1993년 임시 헌법(Interim Constitution)의 마지막 조항에 근거하고 1995년 의회에서 ‘국가통합 및 화해 증진법(Promotion of National Unity and Reconciliation Act, No. 34 of 1995)’이라는 명칭으로 통과된 법률에 기초하여 설립되었다. 법률의 시행에 따라 진실화해위원회는 1995년 말부터 그 활동을 개시하게 되었다. 
  • 남아공 진실화해위원회의 목적은 과거의 분열 및 갈등을 초월하는 사회통합을 위하여 국가적 일체성과 화해를 촉진하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목적은 다음과 같다. 
    • 첫째, 남아공 진실화해위원회의 목적은 사실 조사 및 심리를 진행하여 1960년 3월 1일부터 1995년 5월 9일까지 자행된 인권의 중대한 침해의 원인, 내용 및 정도를 밝혀내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되는 인권 침해행위의 선행사건과 그 정황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관점, 가해자의 동기와 관점까지 고려한다. 
    • 둘째, 남아공 진실화해위원회의 목적은 정치적 목적과 연관된 행위의 관련 사실을 밝히고 남아공 화해증진법이 정하는 요건을 충족하는 사람들에게 사면을 부여하는 것이다. 
    • 셋째, 남아공 진실화해위원회의 목적은 피해자의 생사 및 그 소재를 파악하고 피해자들에게 피해배상을 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 넷째, 위원회가 조사한 인권 침해 사례를 집대성하고 장래 유사한 인권 침해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제안하는 보고서를 발간하는 것이다. 
  • 남아공 진실화해위원회는 정치적 이유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인권 침해 행위를 행한 가해자들을 사면시키고, 인권 침해 행위로 인해 피해를 입은 피해자, 그 가족 및 공동체의 치유를 위해 설립되었으며, 나아가 치유의 과정 중 하나로 진실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야말로 화해와 평화가 번창할 수 있는 도덕적인 환경 조성의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 위원회(TRC) 구성: 1995년 12월에 설립되어 2002년 6월까지 활동하였다. 
    • 진실화해위원회는 11명 이상 17명 이하의 위원으로 구성되는데 위원은 대통령이 내각과 협의하여 선임한다. 
    • 위원은 공평한 자로서 정치적 경력이 짧은 자 중에서 선임한다. 
    • 남아공 국민이 아닌 외국인은 2명 이상 위원으로 선임될 수 없다. 
    • 대통령은 관보로서 위원의 선임을 공표한다. 
    • 대통령은 위원들 중에서 1인의 위원장(Chairperson)과 1인의 부위원장(Vice Chairman)을 지명한다. 위원은 위원회의 임기 동안 위원직을 수행하는데, 대통령에 대한 서면으로 언제든지 그 직으로부터 사임할 수 있다. 대통령은 위원의 능력부족 또는 비위행위가 문제된 경우에는 의회와 상원의 요청 및 합동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위원을 그 직에서 해임할 수 있다. 위원의 사임 또는 사망 등을 이유로 위원직에 공백이 생긴 경우, 대통령은 내각과 협의하여 남은 기간 동안 그 직을 수행할 위원을 새로 선임하거나 그 직을 공백 상태로 둘 수 있다.
  • 위원회(TRC) 조직: 3개의 하부 위원회(Committees) 
    • 인권침해위원회(Human Rights Violations Committee)
    • 배상 및 복권위원회(Reparations and Rehabilitation Committee)
    • 사면위원회(Amnesty Committee)
인권침해위원회는 1960년 3월 1일부터 1995년 5월 9일까지 자행된 인권 침해에 대한 조사를 위해 설립되었다. 본 위원회는 남아공 화해증진법 제6장 및 제7장으로부터 그 권한을 부여받았다. 본 위원회는 피해자의 생사를 확인하고 그들의 현재 거주지를 파악하며, 그들이 입은 피해의 내용 및 그 정도에 대해 조사한다. 또한 위원회는 피해자들이 국가 또는 다른 기관, 단체 또는 개인의 의도적인 계획 하에 인권 침해를 당하였는지 여부를 조사하고, 이에 대한 조사를 마친 이후에는 배상 및 복권 위원회로 피해사건을 이전한다. 

배상 및 복권위원회는 배상 및 복권을 통해 피해자의 존엄을 회복시키는 역할을 한다. 본 위원회는 진실화해위원회, 인권침해위원회, 사면위원회가 회부한 사건을 검토하고, 피해자의 인적 사항, 생사 및 그 행방과 피해의 성질 및 정도를 파악하기 위한 증거를 수집한다. 또한 본 위원회는 긴급한 임시 조치를 포함하여 피해자 배상을 위한 적절한 조치에 관하여 권고할 수 있고, 안정적이고 공평한 사회를 위한 기관의 설립과 인권 침해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에 관하여 권고할 수 있다. 생존자와 그 가족 및 공동체 전체의 치유를 위한 정책 제안을 하는데, 이러한 제안의 목적은 또 다시 인권 유린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배상 및 복권 위원회는 그 활동과 관련하여 진실화해위원회에 중간 보고서를 제출할 수 있고, 그 활동, 조사 사항 및 권고 내용에 대한 최종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한다. 
  • 인권의 중대한 침해 행위로 인한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배상 및 복권위원회에 피해배상을 신청할 수 있다. 어떠한 작위, 부작위 또는 어떠한 공격행위가 인권의 중대한 침해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될 경우에 본 위원회는 이 문제를 인권침해위원회에 회부한다. 만약 신청인이 중대한 인권침해의 피해자라고 판단되면, 본 위원회는 피해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회복을 위한 조치에 관하여 권고한다. 이는 긴급한 임시 조치를 포함하고, 또한 본 위원회는 진실화해위원회에 조사 사항 및 권고 내용을 보고하여 대통령이 필요한 법령을 국회에 제안할 수 있게 한다. 
  • 대통령은 법무부 및 재무부와의 협의를 거쳐 피해자 배상을 위한 기금을 조성할 수 있다. 이 기금은 국회뿐만 아니라 개인들의 기부에 의해 조성되고, 이는 대통령이 정한 규정에 따라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는 데 사용된다. 배상은 잠정 배상(interim reparation)과 최종 배상(final reparation)으로 나뉜다. 
    • 잠정 배상은 중대한 인권 침해 행위로 인해 긴급한 배상이 필요한 경우 최종 배상 조치가 결정되기까지 이뤄지는 배상을 의미한다. 
    • 최종 배상 조치 내용은 본 위원회가 최종 보고서 작성 시 포함된다. 최종 배상 조치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피해자 및 생존자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사면위원회는 정치적 목적을 가진 행위에 대하여 사면을 부여하는 것을 촉진한다. 사면은 관보에 게재함으로써 행하게 된다. 사면을 신청하고자 하는 자는 공포일로부터 12개월 이내에 정해진 양식에 따라 진실화해위원회에 사면을 신청하면 된다. 대법관이 의장인 사면위원회는 중대한 인권침해를 가져오거나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가져오는 경우가 아닌 한 그 심리를 공개한다. 
  • 신청서를 접수받은 사면위원회는 사면 요건을 충족하고, 심리가 필요하지 않으며, 신청과 관련된 작위, 부작위 또는 공격행위가 중대한 인권침해를 구성하지 않는 경우에는 사면을 부여하고 이 사실을 신청인에게 통보한다. 그러나 만약 심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신청인에게 심리장소와 일정을 알려준다. 
  • 신청인은 관련 사실을 모두 공개하여야 하고 이러한 사실을 기초로 사면위원회는 사면 부여 여부를 결정하는데, 당해 작위, 부작위 또는 공격행위가 정치적 목적과 관련없이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행해진 경우이거나 피해자를 향한 개인적인 고의 또는 악의에서 행위가 비롯된 경우에는 사면 대상에서 제외된다.

(마) 활동 결과

남아공 진실화해위원회는 약 21,000명 이상의 피해자 및 증인들로부터 진술을 청취하였는데, 법에 규정된 소환권, 압수수색권 등 강력한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아 진실을 발견하기보다는 화해를 더 추구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남아공 위원회의 가장 특징적인 기능 중 하나가 정치적인 이유로 행해진 범죄에 대해 사면권을 행사하였다는 점인데, 약 7,000건의 사면 신청을 받아 약 1,500명에게 사면을 허가하였다. 
  • 동 위원회는 과거의 범죄에 관하여 완전히 진실을 고백하고 이것이 정치적인 동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입증한 경우에 한하여 사면을 부여하였다. 예를 들어 가해자가 피해자의 사망이 사고에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우에 그러한 피해자의 사망은 정치적인 동기에서 비롯될 수 없는 것이므로 사면은 거부되었다. 위원회는 행위와 정치적인 동기의 관계, 행위의 비례성 등을 고려하였다. 개인적인 이익이나 원한으로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사면이 거부되었다. 예를 들어 정치적인 기관이나 국가 기관의 묵인이나 승인이 없이 단순히 개인적인 인종차별적인 감정에 기하여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사면이 거부되었다. 그러나 사면을 받기 위하여 사과를 하거나 범죄를 반성할 필요는 없었다.

남아공 위원회의 결정에 대하여 법원이 적법여부를 심사하였다. 즉, 피해자의 유족들이 사면 결정의 합헌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소송을 남아공의 헌법재판소에 제기한 예가 있는데, 헌법재판소는 위원회의 결정이 적법하다고 판단하였다. 위원회의 최종보고서를 공개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제기된 소송들은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최종보고서는 1998년 10월 공개되었는데, 몇 개월 뒤 의회는 보고서를 공식적으로 검토하였다. 남아공에서 인종차별철폐투쟁을 벌였던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정부는 보고서가 해방투쟁의 정당성을 훼손하였다는 이유로 위원회의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위원회의 권고사항을 이행하겠다는 약속도 하지 않았다. 위원회의 활동은 비교적 성공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권고사항을 이행하기 위한 정치적인 의지는 부족하였다. 남아공의 대통령은 최종보고서가 나온 후 사면절차에서 사면을 얻지 못한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구성원들에게 사면을 부여하기도 하였다. 위원회가 제시한 개혁 및 배상 방안도 이행되지 않았다. 결국 진실화해위원회의 권고사항이 제대로 이행되느냐 여부는 위원회 활동에 대한 신생 정부의 태도 및 여론의 태도 등이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 수 있다.

(바) 긍정적 평가

남아공의 진실화해위원회는 과도기 정의 기제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성공사례의 하나로, 남아공에서 인종차별을 종식시키고 남아공을 민주적인 사회로 변화시키는 데 긍정적인 기여를 하였다고 일반적으로 평가된다. 먼저 동 위원회는 사회 대통합의 수단으로 기능하였는데, 남아공 진실화해위원회는 무엇보다 그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소상히 세계에 알림으로써 피해자와 그 가족 및 친구들의 심적, 정신적 치유를 돕고 화해를 통한 사회 대통합의 수단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즉, 지난 과거의 일을 쏟아낸 범죄자뿐만 아니라 그 이야기를 듣게 된 피해자의 가족 및 친구들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고, 이를 통해 심적, 정신적으로 치유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남아공 민주주의 및 법치주의 확립에 기여하였는데, 소위 진실화해위원회가 갖춰야 하는 본질적인 요소, 즉 완전한 공개(full disclosure), 사면(amnesty), 배상(reparation) 및 복권(rehabilitation)을 모두 갖춘 남아공의 진실화해위원회는 과도기 정의를 실현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민주주의로 향하는 과도기에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은 법치주의의 초석을 놓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진실 규명 및 권위를 가진 기록을 했다는 차원에서 의의가 있는데, 남아공의 진실화해위원회는 1년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진술을 받고 심리를 진행하면서 아파르트헤이트정책과 관련하여 일어난 중대한 인권침해 사실을 면밀히 조사하고 기록하였다. 남아공의 진실화해위원회는 일반적인 형사 절차보다 더욱 상세히 사실을 조사하고 이를 토대로 진실을 규명하였으며, 그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은 장래에 이와 같은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평가받는다.

남아공 사례가 특히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좀 더 구체적인 이유는, 국민화합 등 정치적 고려에 의한 사면위원회와 타 위원회를 분리하여 운영하였고, 남아공의 종교적·문화적 측면에는 특유의 용서라는 가치의 포용성이 녹아 있었다는 점, 그리고 1년여에 걸친 다양한 집단 참여를 통한 성공적인 위원회 구성 등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사) 부정적 평가

물론 남아공 진실화해위원회는 일정한 한계와 문제점을 노정하기도 했다. 먼저, 용서의 어려움을 들 수 있는데, 범죄자들의 범죄 행위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많은 경우 피해자 및 그 가족들에게 더욱 심한 고통을 준다. 고문이나 살해행위에 대한 진술은 피해자 및 그 가족들에게 치유는 커녕 오히려 치명적인 정신적 충격을 주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잔혹한 범죄행위를 범한 범죄자들이 처벌당하지 않고 사면된다는 점은 피해자와 그 가족 및 친구들에게 더 큰 상처로 다가올 수 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유인책으로써 사면을 내세웠고, 이를 통해 숨겨진 진실이 파헤쳐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신의 가족과 친구가 어떻게 죽어갔는지를 알게 된 피해자의 가족과 친구들이 그 가해자가 그러한 행위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처벌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경우, 피해자의 가족과 친구들은 ‘정의’를 원한다.

두 번째로 진실화해위원회가 정쟁의 도구로 쓰인다는 비판도 있다. 국민당은 1997년 여름 진실화해위원회가 정치적 탄압의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국민당은 수차례에 걸쳐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고, 진실화해위원회를 상대로 법적 조치를 취하는 등 그 활동에 협조하지 않았다. 또한, 클러크(F. W. de Klerk) 대통령 이전에 대통령직에 있었던 보타(P. W. Botha) 전 대통령을 국민당이 소환하였으나 보타 전 대통령은 그 소환에 응하지 않았다. 보타 전 대통령은 자신이 인권침해 행위를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하며 자신이 집권할 당시 정부의 행위에 대해 사과하는 것을 거절하였다. 소환에 응하지 않은 행위에 대해 법원은 1998년 8월 22일 보타 전 대통령을 12개월의 징역 및 벌금 약 미화 1,577불의 지급을 명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마지막으로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사실을 진술하기 두려워할 것이라는 점은 진실화해위원회의 도입 시부터 지적되었다. 이에 대한 대책 중 하나로 위원회는 자발적으로 출두하지 않는 사람들은 소환하여 진실규명 절차를 진행시켰다. 이와 관련된 문제로 본인의 익명성을 유지해 달라는 요청이 종종 있었는데, 예를 들어 아프리카 민족회의(ANC)당은 당을 위해 스파이 행위를 한 사람들 목록에 대해 익명성을 유지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러나 진실화해위원회는 익명성의 요구는 진실화해위원회의 근본적인 역할에 배치되는 것이라며 그 요청을 거절하였다.

결론적으로 인권유린 등으로 기소당한 사람이 매우 적었다는 사실은 일정 부분 한계로도 파악할 수 있으며, 피해자 배상에 있어서 진실화해위원회의 권고보다 낮은 액수로 피해자에게 지급하는 등 실제 위원회의 권고사항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경우들을 다수 확인할 수 있다.


(3) 시사점

진실을 밝히기 위해 사면권까지 부여받은 남아공 진실화해위원회 사례의 장단점은 앞으로 유사한 위원회의 설립이 필요할 수 있는 한반도 상황에도 매우 구체적인 시사점을 제공할 것이다. 특히, 극심한 인종적 갈등을 겪은 사회임에도 관용의 정신으로 국민통합과 화합을 위해 적극적인 진실화해 기제를 작동한 점, 그리고 진실화해위원회에 사면권을 포함한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여 진실 규명에 방점을 두고 사면을 그 도구로 활용한 점 등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이 경우에도 형사처벌 시도가 검찰에 의해 꾸준히 시도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이 사면과 관련하여 더욱 활기를 띄게 되었다는 점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반면 과도기 정의 기제가 실제 적용되기 위한 미래의 한반도 상황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쉽게 예단할 수는 없지만, 평화적 정권교체 후 진행된 남아공에서의 사례가 한반도에도 곧바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의문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나 한반도에서 과거 인권침해에 대한 처벌을 요청하는 피해자나 관련 단체의 목소리가 매우 강할 경우, 구체적인 과거사 청산과 관련해 사면권 등과의 긴밀한 연계를 통해 형사처벌 가능성을 상당 수준으로 제한한 남아공의 진실화해위원회 모델이 우리에게도 쉽게 적용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전망도 충분히 가능하다. 가장 중요한 국제적 인권 이슈로 부각된 북한의 현 인권상황을 보더라도 진실화해 보다는 사법적 정의의 실현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더 클 수 있음을 또한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

그러함에도 형사처벌로 모든 과거의 행위를 재단하는 것은 자칫 더 큰 사회적 갈등과 후유증을 야기할 우려가 존재하는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한반도의 제도적 통일 이후 진정한 사회적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에서 진실규명과 동반된 용서와 화해의 절차가 반드시 진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남아공의 진실화해위원회 사례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선례를 제공해 주었으며, 우리 또한 한반도의 상황에 맞게 그 장점과 단점을 고려하여 적절히 차용할 부분이 있음을 인식하고 이에 대해 더욱 상세한 연구가 진행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출처: 한반도에 있어서 과도기 정의(김수암 외,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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