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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포스팅에서는 북한을 건국하는 데 핵심 인물인 김일성, 김책, 최현(현 최룡해 노동당 비서의 아버지) 등이 속해 있는 동북항일연군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중국공산당이 조직한 부대인 동북항일연군은 어떤 단체이고, 그 단체가 어떤 활동을 하였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동북항일연군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73387

링크를 클릭하여 동북항일연군에 대하여 알아보세요.


동북항일연군에 관련한 내용

한국독립군은 중국 본토로 이동했고 조선혁명군 세력의 역량은 크게 쇠퇴한 가운데, 만주에는 사회주의 계열의 무장 독립군이 남아 있었다. 이들은 중국공산당이 조직한 동북항일연군의 부대로 편성되어 항일유격전을 전개했다. 동북항일연군 조선인유격대는 1937 함경남도 갑산의 보천보로 들어와 경찰주재소와 면사무소 등을 공격했다. (*** 보천보 전투 : 위키피디아 사전 참고 https://ko.wikipedia.org/wiki/%EB%B3%B4%EC%B2%9C%EB%B3%B4_%EC%8A%B5%EA%B2%A9 ) 사건은 국내 신문에 크게 보도되기도 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37060600209102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37-06-06&officeId=00020&pageNo=2&printNo=5664&publishType=00010 (보천보 전투 관련 기사. 동아일보 1937 6 5)


1936 동북항일연군 조선인유격대원들은 조국광복회를 결성했다. 조국광복회는 과거 계급지상주의 반성하고 이념적 차이를 초월한 민족적 단결을 이루는 항일단체를 지향했다, 이에 따라 조국광복회는 동북항일연군의 사회주의자뿐만 아니라 일제에 저항하는 모든 사람들을 구성원으로 삼고자 했다. 이에 함경남도 풍산군 일대의 천도교도들이 가입하는 국내로 조직을 확대해 갔고 일제의 식민 통치기구들을 습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보천보 전투에 관여한 것이 일제에 발각되어 조직의 대부분이 붕괴되었다. 일제의 토벌로 세력이 크게 약화되자 잔류 부대는 소련 영토로 이동했다.


출처: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 한국사, 서울:새문사, 2014, p.451-452


동북항일연군 관련 기사

출처: 최영재,  김일성 실제활동, 중국공산당 동북항일연군의 진실”, 아시아투데이,  2015.10.05

링크: 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51004010001897


1932 스무살 청년 김일성은 무장투쟁으로 무송에서 우리 독립군 고동뢰(高東雷) 소대장 일행을 참살하고 자취를 감춘 ,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는 이후 안도현(安圖縣) 있는 중국인 오의성(吳義成) 부대로 갔다.

오의성은 공산주의자는 아니었다. 200 가량의 병력을 가지고 있었다. 김일성은 오의성의 당번병으로 들어갔다. 오의성 부대는 1933년에는 600명으로 병력이 늘고 왕청현(汪淸)) 근거지로 하다가 1934 6 28일에는 항일부대와 연합하여 왕청현에 있는 만주국 군대를 공격한 일이 있다

전투를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오의성 부대가 김일성의 지휘 아래 있었던 것으로 조작하고 있다. 일제 군대의 공격 때문에 오의성 부대는 1936년에는 동녕현(東寧縣) 쪽으로 이동했다.

중국인 오의성 부대 당번병으로 활동

봄에 일제의 가중하는 포위공격을 견디려고 중국 공산당 만주성위 산하 동북항일연군 5군과 2 2 3사와 오의성 부대는 서로 협의하여 연합전선을 폈다. 때에 비로소 오의성 부대원이었던 김일성은 공산주의 부대인 동북항일연군과 접촉하게 되었다. 특히 2 2사와 3사에는 한인들이 많아 그에게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김일성은 동북항일연군 2 3(사장 金日成, 3번째 김일성, 보천보 전투의 주역, 1937 11 13 일본군에 사살됨) 가담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후 3사는 1로군 2 6사로 개칭되면서 남하하여 압록강 대안인 무송현 장백현으로 이동했다. 무송현에는 오의성 부대의 지대인 이옥진(李玉珍) 부대가 200 가량의 병력을 가지고 주둔해 있었다. 악단장(岳團長) 부대라고 하는 비공산계 항일부대도 있었다. 6사장 김일성(북한 김일성과는 다른 3번째 김일성) 이들 부대와 연합하여 1936 8 17일에 무송현성을 포위 습격하여 일제를 놀라게 일이 있다.


북한의 김일성은 무송에서 살았던 사람으로 일대의 지리에 밝았으므로 전투 6사장 김일성(3번째 김일성) 부대에 가담했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에서는 무송현성 전투를 북한의 김일성이 조선인민혁명군을 데리고 항일부대와 연합하여 전투로 조작하고 있다. 북한의 김일성이 6사장 김일성 부대의 대원이었음은 다음과 같은 일로 확인되었다. 만주 안도현의 치안대장으로 이도선(李道善)이란 한인 간부가 있었다. 이도선은 동북항일연군 토벌에 뛰어난 솜씨를 발휘했던 사람이다.

생포된 김일성의 막내동생 김영주

1937 봄에 이도선이 6사장 김일성 부대 토벌에 나섰다가 소년 대원을 붙잡아 왔다. 소년은 북한 김일성의 막내 동생 김영주(金英柱)였다. 15살밖에 안된 김영주는 1932년에 어머니를 잃고 둘째형 철주(哲柱) 둘이서 살다가 철주마저 1935년에 죽자 의지할 데가 없어 큰형(북한의 김일성) 찾아 6사장 김일성 부대의 소년대원으로 종군하고 있었다. 마침 이도선의 이도일(李道日) 무송에서 김일성의 아버지인 김형직과 친구지간이었기에 고아인 김영주를 불쌍히 여겨 보호했다고 한다. 이렇듯 북한의 김일성은 동북항일연군의 6사장 김일성(3번째 김일성) 부대의 대원이 되었다. 그는 시기 김일성(金一星)으로 통명하고 있었다. 이런 동북항일연군 활동을 북한은 김일성이 조선인민혁명군을 창설해서 10만여회 전투를 벌여 우리나라를 해방시켰다고 선전하고 있다.


1932 4월부터 1945년까지 10만여회 전투를 벌였다고 하는 것이 북한의 선전이다. 그렇지만 1940 여름부터 1945년까지는 지하공작기였으므로 무장활동 기간은 북한의 주장대로 하더라도 32년부터 40년까지 8년간이다. 8년간에 10만여회라고 하면 하루도 쉬지 않고 하루 평균 34회의 전투를 셈이 된다. 이를 시간으로 따지면 매일 밤잠도 자지 않고 2시간에 3번씩 전투를 것이 된다. 이런 거짓말을 누가 믿겠는가.


…(중략)…

김일성, 1940 연말에 김정숙과 함께 소련으로 탈출

그래도 1940년에 들어가서는 동북항일연군은 최후 괴멸 상태에 들어갔다. 총사령 양정우(楊靖宇) 비롯하여 숱한 간부가 전사하고 체포되거나 투항한 자도 부지기수였다. 1940 12월엔 동북항일연군 2방면군장 김일성(4번째 김일성, 북한의 김일성과 동명이인) 부하 20명을 데리고 소련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무렵 북한의 김일성과 그의 김정숙도 소련으로 도주했다. 때문에 1941 2월에 이르러 중공당 만주성위 산하 동북항일연군은 만주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소련으로 도주한 병력은 모두 300 가량이었고 가운데 한인은 100 정도였다. 소련은 우수리강을 사이에 두고 동북항일연군에 대한 원조를 아끼지 않았고 이들 입국자들을 수용하여 재교육했다.


김일성, 연해주에서 소련 첩보요원 훈련

동북항일연군 1로군계 대원들은 블라디보스톡 근처의 오케얀스카야의 야영학교에 수용되었으므로 북한의 김일성도 이곳에 있었을 것이다. 이들 특별히 선발된 자들은 따로 소련군 장교의 지도 아래 무전 기술, 낙하산 훈련 첩보요원으로서 특수훈련을 받았다. 일본과의 전쟁이 시작됐을 후방교란요원으로서의 교육이었다.

북한의 김일성은 1945 8.15 직후에 평양에 나타났을 이런 교육을 받았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소련은 동북항일연군 대원들을 정보 수집차 무장 공작원으로 만주의 그들 연고지로 침투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공작들은 소련 내무성 연해주지구 경비대의 통제 아래 진행되었을 것이다. 북한의 김일성은 머리가 빠르고 행동이 민첩한 사람이었으므로 첩보 공작차 만주로 보내졌을 가능성이 충분한데 다른 사람들에 대한 기록은 있어도 김일성에 관한 기록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1945년에 일본이 항복하자 소련군의 배를 타고 북한으로 파견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가 소련장교들로부터 배운 특무공작의 기술은 일본을 패망시키는데 쓰이지 않고 거꾸로 북한 인민을 정방위통제체제로 묶는데 사용되었다.

소련이 북한으로 파견한 한인들은 크게 나누어 2갈래다. 하나는 북한의 김일성과 같은 중국 공산당의 동북항일연군 출신으로 최용건, 김책, 최현 등이 이에 속했다. 구체적인 숫자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자료는 없으나 소련으로 넘어간 동북항일연군의 한인 100여명 가운데 해방 돌아온 이는 60, 70 정도였다.


1945 블라디보스톡에서 배를 타고 원산을 통해 평양 도착

소련은 이들 30여명에게는 장교계급장을 붙여서 데리고 왔다. 이들은 블라디보스톡에서 기차로 만주의 목단강까지 가서 거기서 기차로 회령쪽으로 들어오려다가 노송령 터널을 일본군이 폭파해 막혔기 때문에 다시 블라디보스톡으로 되돌아가서 배를 타고 원산을 거쳐 1945 9 중순에 평양에 도착했다
.

이들과 성분이 또다른 한인들은 소련 태생의 2세들이었다. 허가이, 박창옥, 박의원, 기석복 남일 등이 이에 속했다. 이들은 소련에서 학교 교육을 받았으며 소련공산당원으로 성장했던 사람들이다
.

하지만 소련군 당국은 김일성에게 소련에 있었던 사실을 감추게 했다. 때문에 김일성은 1940년부터 1945년까지 기간을 만주와 국경지대의 국내에서 지하공작을 지휘한 것으로 꾸몄다. 이유는 물론 투쟁경력을 높이려는 것도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소련의 앞잡이가 아니란 것을 보이기 위해서였다
.

해방 당시 북한에 위성정권을 세우려고 했던 소련은 가장 신임할 있는 세력을 주축으로 삼아야 했다. 무렵 소련이 가장 신임할 있는 세력은 자신들이 지원하고 보호해온 동북항일연군 출신들 밖에 없었다. 그래서 소련이 낙점한 인물이 김일성이었다
.

결국 김일성의 유일최고의 무장혁명가였다는 북한의 선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한 거짓말임을 있다. 북한에서는 이처럼 엄청난 거짓말이 우리 민족의 항일투쟁의 역사의 전부가 되어있다. 거짓말 역사는 북한에서뿐만 아니라 남한의 역사학계에서도 상당수가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 다음 포스팅은 건국 후 북중 관계에 대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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