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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전북대 김근배 교수


북한의 과학기술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크고 작은 변화를 거듭해 왔습니다. 사상의 우위가 강조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과학기술은 특히 어려운 현실에 놓일 때마다 적지 않게 달라졌습니다.

해방직후, 1950년대 후반, 1970년대 초반, 1980년대 중반, 1990년대 후반은 과학기술에서 변모가 많이 일어났던 대표적인 시기입니다. 이는 북한 과학기술이 기본적으로 사회체제와 지도사상의 영향력 범위 안에 있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다소의 유동성과 자율성을 지니며 전개되어 왔음을 시사해 줍니다.


소련 과학기술의 모방

북한은 해방직후부터 1950년대 중순까지 전적으로 소련을 모델로 삼아 과학기술을 발전시켰습니다. 소련이 지니고 있던 사회주의 모국으로서의 위상과 뛰어난 과학기술 수준을 갖춘 선진국가라는 이미지에 비추어보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갓 출발하는 낙후한 북한이 사회주의 선두주자라 할 소련을 뒤따라야 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던 것입니다.
1946년에 세워진 김일성종합대학은 행정조직, 전공분야, 교육내용, 학내활동 모든 측면에서 소련의 대학체제를 그대로 본받았습니다. 명칭도 아스삐란트라, 까페드라, 까비넷트, 꼰페렌치아, 꼰슬따찌야 등이 자연스럽게 사용되었습니다..

과학원은 1952년에 소련의 과학아카데미를 모방해서 과학기술은 물론 인문학, 사회과학까지 포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조직체계와 임원구성, 사업계획, 활동방향 등이 소련의 사례를 본보기로 삼아 짜여졌습니다. 북한의 요직에 있는 책임자들이 소련으로 파견되어 과학기관을 둘러보고 상세한 조언을 받기도 했습니다.
북한은 자체의 기반이나 경험이 없었음에도 소련의 앞선 선례를 본받음으로써 단기간 내에 국가의 중추적인 과학기관들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로써 월북 인사들을 중심으로 우수한 과학기술자들은 국가로부터 물적, 인적 지원을 받으며 곧바로 연구 활동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과학의 주체, 사상의 주체

북한이 소련식에서 벗어나 고유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후반부터였습니다. 중소간의 이념분쟁이 격화되고 국내에서는 반대파가 부상하는 등 위기상황에 직면함에 따라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세울 필요를 깨달았습니다. 그 결과 소련을 뒤따르는 것에서 탈피하여 북한의 독특한 역사경험과 사회현실을 보다 충실히 반영하는 방향으로 사회체제를 구축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제는 당시 새롭게 부상하던 현장 출신의 과학기술자들이 맡았습니다. 이들은 외국의 과학기술보다 북한의 실정에 맞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관심이 높았습니다. 국가와 인민을 위한 과학기술이 강조되어 순수과학보다는 응용과학과 산업기술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졌습니다.

그 발전방안으로는 과학기술과 생산의 결합, 심지어는 생산현장에서 수행되는 ‘현지연구사업’이 강화되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짧은 시일 안에 연구 성과가 많이 얻어지며 과학기술의 발전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이 때에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여겨졌던 것이 북한에서 독특하게 발전된 리승기의 비날론 연구였습니다.
이 때부터 주체라는 말이 사회 전반에 널리 퍼졌고 비날론 공업화는 그 사용을 정당화시켜 주는 과학적 근거가 되었습니다. 우선은 과학기술계를 중심으로 ‘과학에서 주체를 확립하자’라는 주장이 본격화되며 문학, 언어, 경제 등 다른 영역으로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주체는 과학기술 분야에서 그 진위가 밝혀졌으므로 가장 과학적이고, 나아가서는 사회주의적인 것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주체사상과 주체과학

주체사상이 정식화되면서 과학기술을 포함한 모든 분야는 1970년대 들어서면서 새로운 방향으로 재편되었습니다. 어떤 것보다 사상이 가장 앞세워지며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주체사상의 위대성과 전능성이 강조될수록 과학기술도 그 가르침을 받으며 뒤따라야 했던 것입니다. 과학기술이 주체과학, 주체공업, 주체의학, 주체농법 등으로 불리며 독특한 모습을 띤 것은 바로 이 무렵부터였습니다.
이 시기 북한의 과학기술은 ‘주체과학’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내용은 북한의 자체 자원·기술·설비에 철저히 기반하고, 모든 인민을 동원하여 외부에 대한 의존없이 자력으로 북한의 실정과 필요에 가장 적합하게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나간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과학기술은 실천지향적, 집단주의적 성격에다가 새로이 지역주의적, 인민주의적 성격을 가미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의 과학기술은 몇몇 부문을 제외하고는 다른 나라에 비해 크게 뒤떨어졌습니다. 특히 첨단기술, 소비재기술, 기초과학 부문은 낙후성이 가장 두드러진 영역들이었습니다. 이는 과학기술의 정치사상화, 우수 고급인력의 부족, 외국과의 교류 중단, 지나친 실용적 목표 추구, 국방기술 치중 등에 기인했습니다.

주체과학 대 선진과학

북한에서 서방 선진과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그 수용을 위한 가시적인 조치가 취해진 것은 1980년대 중반부터였습니다. 자신의 과학기술이 뒤떨어졌음을 인정하면서 ‘과학기술시대’에 맞게 과학기술의 전환을 모색했습니다.

다른 나라처럼 과학기술의 세계추세, 영재교육, 대외교류, 과학기술자 우대 등이 서서히 추진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써 선진과학은 주체과학과 모순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며 병행해서 추진될 수 있었습니다.
이 시기부터 과학기술에서 두드러진 몇몇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과학기술은 사상적 구속으로부터 다소 벗어나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영역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생겨났습니다. 정보기술, 생물공학, 신소재공학, 나노과학 등 첨단분야의 중요성이 부각되며 이를 뒷받침할 제도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과학영재와 컴퓨터수재 교육기관이 세워지고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 등 주요 대학에 연구원과 박사원이 확충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외국유학 및 연수, 해외동포와의 교류가 장려되며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의 습득도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북한은 21세기를 ‘정보산업의 시대’로 규정하면서 ‘과학기술중시사상’을 새롭게 주창하고 있습니다. 정보기술을 필두로 첨단 과학기술을 선행시켜 기술·산업·경제는 물론 정치·관리·교육 등 사회전반의 과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며 사회발전을 재촉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체제와 사상의 이완, 전통산업의 유지, 과학기술 주도세력의 성향 등으로 인해 주체과학의 위력도 강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현재 내세우고 있는 강성대국의 건설은 철저히 세계수준의 과학기술에 기반해야 하지만 주체사회주의의 고수는 그것만으로는 의문스럽기 때문입니다.